'불운의 명작, 항공무기'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11.04.07 F-16XL 전투기
  2. 2011.04.07 YA-9 근접항공지원 공격기 (1)
  3. 2011.04.07 보잉 X-32 스텔스 전투기
  4. 2011.04.07 A-12 어벤저 II 공격기
  5. 2011.04.07 라비(Lavi) 전투기
  6. 2011.04.07 S-67 블랙호크 공격헬기
  7. 2011.04.07 RAH-66 코만치
  8. 2011.04.07 Su-47 베르크트 전투기
  9. 2011.04.07 MiG 1.44
  10. 2011.04.07 XF-108 레이피어

1980년대 F-111 단거리   폭격기 대체 위해 추진

F-16XL은 베스트셀러 전투기 F-16을 기본으로 성능을 최대로 이끌어 낸 역사적 전투기다. 비록 미 공군의 신형 전투기 사업에서 탈락해 역사 속에 묻혔지만 F-16XL을 통해 연구됐던 기술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F-16XL은 미 공군이 F-111 단거리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1980년대 추진한 ETF(Enhanced Tactical Fighter) 사업이 계기가 됐다. 폭격기를 폭격기로 교체하지 않고 전투기 개발 사업으로 추진한 이유는 별도의 호위 전투기 없이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필요시 공중전까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폭격기와 제공전투기를 단일 기종으로 교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당시 맥도널 더글러스(現 보잉)와 제너럴 다이내믹스(現 록히드마틴)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우수한 공중전 성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폭격기를 전투기로 개조하는 것보다 전투기를 폭격기로 개조하는 것이 쉬웠다. 따라서 당대 최고의 전투기 제작사가 경쟁에 참여한 것이다.

 양 사는 각각 F-15와 F-16 플랫폼을 이용해 장거리 폭격이 가능하도록 항속거리를 증가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F-15는 대형 기체였기 때문에 내부 공간의 여유가 많아 연료량 증가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맥도널 더글러스는 F-15 형상을 유지하면서 내부 연료탱크를 추가하고, 외부에 컨포멀 연료탱크를 부착시킨 F-15E형을 제안했다.

 반면 소형 경량 전투기였던 F-16은 연료량 증가가 쉽지 않았다. 이에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델타익의 특성에 주목하고 F-16의 무미익 델타형을 제안했다. 기존 F-16 구성품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날개를 대형으로 교체해 많은 연료를 내부에 탑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동체를 연장해 내부 연료탑재량도 증가시켰다. 기체 내부는 거의 유사하지만 외형은 확연히 달라진 새로운 F-16, 즉 F-16XL형이 탄생한 것이다.

 F-16XL에 적용된 주익은 후퇴각이 70도인 내익과 후퇴각 50도인 외익이 결합된 형태다. 비교적 복잡한 형상이지만 단순 델타익에 비해 양력을 증가할 수 있고, 초음속에서의 항력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 새로운 주익으로 F-16XL의 날개면적은 기존형에 비해 2배 이상 넓어졌고, 내부 연료탑재량도 약 73%가 증가했다. 중량이 소폭 증가한 데 비해 항력은 감소하고, 연료탑재량이 증가했기 때문에 항공기 성능은 크게 향상됐다.

 예컨대 기존 F-16의 최대속도는 무장을 탑재하면 마하 0.9에 불과했지만 F-16XL은 무장을 탑재하고도 마하 1.6의 비행이 가능했다. 초음속 공대지 무장 투하가 가능했던 것이다. 무장탑재 스테이션도 총 17개소로 늘어나 500파운드 폭탄 22발 탑재가 가능했다. 기존 F-16과 비교하면 F-16XL은 같은 무장탑재에서 항속성능이 2.24배, 2배의 무장을 탑재해도 1.45배의 항속성능이 향상된다고 제작사는 밝혔다.

 F-16XL은 모듈화된 F-16의 구성품과 동체를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기존 F-16과의 공통성이 72%에 달했다. 따라서 기존 F-16 생산라인의 활용이 가능해 개발비는 물론 획득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비용뿐만 아니라 F-15E에 비해 낮은 레이더반사단면적(RCS)과 무장 투하 후 고속으로 귀환이 가능했던 F-16XL은 여러모로 우수성이 있었다. 하지만 보다 높은 공격 능력을 원했던 미 공군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F-16XL은 경쟁에서 패하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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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0기와 경쟁에서 패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근접항공지원(CAS)에 특화된 공격기라면 미 공군의 A-10, 러시아의 Su-25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A-10 공격기는 1991년 걸프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임으로써 명성을 굳혔다. 이번에 소개할 YA-9 공격기는 이 A-10 공격기와 경쟁에서 패해 역사 속에 묻힌 기종이다.

 YA-9와 A-10 공격기는 미 공군이 67년부터 시작한 A-X(Attack Experimental) 사업을 통해 개발됐다. 60년대 나토군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대량의 전차부대를 보유한 바르샤바조약기구 지상군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였다. 당시 서유럽의 나토군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항할 충분한 양의 전차를 확보하지 못했다. 다양한 종류의 대전차 전력을 고심하던 나토군은 대전차 공격기와 공격 헬기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미 공군은 전차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저가의 대전차 공격기를 개발해 대량의 전차를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구상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A-X 사업이었다.

 A-X 사업으로 탄생하게 될 공격기는 비포장의 야전 비행장에서도 운용이 가능해야 했다. 그리고 전방의 화력지원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전장 상공에서의 장시간 체공능력이 요구됐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F-4 팬텀 전투기에서 A-1 스카이레이더 공격기까지 다양한 기종을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투입했다. 그 결과 프로펠러 공격기였던 A-1이 오히려 제트 전투기들보다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더 효과적임이 판명됐다. 비록 무장탑재량도 적고, 속도도 느렸지만 저공에서 장시간 체공할 수 있었던 A-1 공격기를 지상군이 더 선호했던 것이다.

 총 6개 항공기 제작사가 A-X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시제기 제작업체로 선정된 것은 노스롭 사와 페어차일드 사였다. 시제 항공기 명칭은 각각 YA-9와 YA-10으로 명명됐고, 72년부터 본격적인 시험평가가 이뤄졌다.

 베트남전 경험을 통해 저고도에서 작전하는 항공기는 다양한 구경의 대공화기에 노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새로 개발되는 공격기는 대공화기에 대한 생존성이 특히 강조됐다. 이러한 대책으로 양 기종은 조종석에 23㎜ 탄의 직격에도 견딜 수 있는 욕조형 방탄판을 탑재해 조종사의 생존확률을 높였다.

 A-10과 YA-9를 비교하면 형상 측면에서 엔진 위치와 꼬리날개가 가장 차이가 난다. A-10은 엔진을 후부 동체 위에 각각 떨어뜨려서 얹은 형태로 설계했다. 특이하게도 동체 위에 엔진을 위치한 이유는 앞과 뒤의 날개가 엔진을 가려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엔진 뒤에 위치한 수직 꼬리날개는 엔진으로부터 방사되는 적외선을 감추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유사시 한쪽 날개가 피탄되더라도 조종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꼬리날개는 두 개로 설계했다.

 독특한 외형의 A-10과 달리 YA-9는 일반적인 제트기 형상으로 설계됐다. 엔진은 주날개 안쪽에 위치했고, 수직 꼬리날개도 한 개였다. YA-9는 한국 공군도 장기간 운용했던 세스나 사의 A-37B 공격기를 마치 그대로 확대시켜 개발한 듯한 외형을 보였다. YA-9는 A-10보다 최대속도를 높여 생존성 향상을 도모했지만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못했다.

 양 기종의 시험평가 결과, 미 공군은 73년 1월 YA-10을 차기 공격기로 선정했다. 생존성과 양산 비용 측면에서 YA-10이 YA-9보다 우수했던 것이다. YA-9 공격기는 평범한 외형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YA-9와 유사하게 설계된 러시아 Su-25 공격기는 다양한 국가에 수출돼 대표적인 주요 공격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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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합동공격전투기
     사업 경쟁에서 패배

F-16전투기 이래로 세계 최대의 베스트셀러 전투기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F-35 전투기는 합동공격전투기(JSF) 사업의 결과물이다. 보잉 X-32 스텔스 전투기는 치열했던 합동공격전투기 사업 경쟁에서 록히드마틴의 F-35(X-35)에 패한 기종이다.

 록히드마틴과 보잉의 경쟁은 보수와 진보의 경쟁이라 할 수 있었다. 록히드마틴은 기존 F-22 전투기에서 검증된 개념을 최대한 적용해 보수적인 설계안을 제시했다. 반면 보잉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대거 적용해 진보적인 설계안을 제시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적인 설계 차이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추진 계통이었다. 록히드마틴은 주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전달받아 수직 추력을 발생시키는 리프트 팬을 조종석 뒤에 설치했다. 리모트 팬이라 불리는 이 설계방식은 수평비행에 필요없는 리프트 팬이 공간을 차지하는 만큼 중량·용적·성능면에서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기술적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보잉은 주엔진 하나로 수직비행에 필요한 부양력을 얻는 다이렉트 리프트 방식으로 X-32를 설계했다. 다이렉트 리프트 방식은 리프트 팬과 같이 부가적인 장비 없이 주엔진의 배기를 직접 이용하므로 리모트 팬 방식에 비해 비행성능이 좋았다. 하지만 엔진의 배기 방향을 바꾸는 기술과 연소가스의 공기흡입구 재흡입을 통제하는 방식이 복잡해 기술적인 위험도가 높았다. 게다가 엔진의 추력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수 하부에 대형 공기흡입구를 필요로 했고, 수평미익이 없는 형상을 초기에 고려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전투기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 덕분에 X-32는 파생형간의 공통성이 80~90%에 이르러 비용이 적게 들 것으로 예상됐다. X-32는 대형의 삼각익 덕분에 연료 탑재량도 많아 경쟁기종이었던 F-35(X-35)보다 항속성능이 우수했고, 최대속도도 더 뛰어났다.

 보잉의 X-32는 경쟁기종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였지만 독특한 설계방식 덕분에 동체 중앙에 엔진이 있어 외형이 뚱뚱했다. 게다가 대형의 공기흡입구를 기수 아래에 갖고 있어 마치 턱빠진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기술적으로 위험도가 높았던 X-32는 변화하는 군 요구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평미익이 최종적으로 추가되는 등 설계변경이 자주 이뤄졌다. 초도비행은 빨랐지만 개발지연으로 록히드마틴의 X-35보다 평가가 늦어졌고, 수직이착륙형의 기술적 문제 해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최종 평가에서 보잉은 록히드마틴에 패했고, 21세기 하늘의 승자는 F-35로 결정났다.

 록히드마틴보다 위험도가 큰 기술을 적용한 것이 X-32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X-32의 독특한 외형은 실패의 간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실실 웃는 전투기’ ‘스마일 펠리컨’ ‘미운 오리새끼’ ‘턱빠진 웃는 개구리’, 클린턴의 부적절한 관계 모니카 르윈스키를 빚댄 ‘모니카’ 등은 독특한 외형 때문에 X-32가 얻게 된 많은 별명이다. 이러한 별명에서 X-32가 소요군에 어떤 이미지로 각인됐을지 짐작이 간다.

 항공기 개발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비용·일정 등일 것이다. 그러나 X-32 실패 사례를 보면 향후 항공기 외형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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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980년대말
    개발 추진된 스텔스機


A-12 어벤저II는 미국이 1980년대 말에 개발을 추진하다 포기한 스텔스기 이름이다. 마치 UFO를 연상시키는 외형의 이 스텔스기는 당시 미 해군의 주력 공격기였던 A-6 인트루더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됐다.

 A-6은 초기형인 A-6A형이 1963년에 실전배치된 이래 1997년까지 미 해군의 대표적인 함재 공격기였다. 약 8톤의 외부무장을 탑재하고도 1600㎞의 전투행동반경을 보였던 A-6의 공격력은 A-7 콜세어II 공격기나 F/A-18 호넷 전투기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A-6의 대를 이어 미 해군은 A-6 수준의 공격능력을 갖추면서도 미래 전장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생존성이 강화된 ATA(Advanced Tactical Aircraft) 사업을 계획했다.

 ATA 사업에는 업체들이 2개의 팀을 구성해 미 해군에 설계안을 제시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맥도널 더글러스로 구성된 GD팀은 삼각형 모양의 기체를 제안했고, 노스롭과 그루먼·LTV로 구성된 노스롭팀은 B-2 스텔스 폭격기를 축소한 듯한 형상의 기체를 제안했다. 결과는 GD팀의 승리였다. GD팀이 더 낮은 비용에 높은 성능을 제시했던 것이다.

 ATA 사업으로 탄생할 항공기는 F-117보다 뛰어난 스텔스 성능과 무장능력이 요구됐다. 미 해군은 A-6보다 2배의 신뢰도를 기대한다는 의미에서 명칭도 6의 2배를 곱해 A-12로 명명했다.

 A-12는 삼각형 모양의 다면체 설계와 대형의 내부 무기고를 탑재해 레이더 반사 단면적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엔진은 쌍발로 결정됐고, A-6보다 긴 작전반경이 요구돼 삼각형의 전익기(Flying Wing) 형태로 설계가 진행됐다.

 A-12는 최대이륙중량 31톤에 내부연료만 10톤 이상 탑재한다. 충분한 내부연료량 덕분에 GD팀은 노스롭팀 설계안이 전투행동반경 1570㎞를 보였을 때 전투행동반경 약 2030㎞라는 높은 성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노스롭팀보다 긴 항속능력의 스텔스 공격기를 대당 3100만 달러에 공급하겠다는 GD팀의 설계안은 미 해군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텔스기 개발 경험이 없었던 GD팀은 신기술을 대거 적용하면서도 개발비를 39억 달러로 예측했다. 그러나 사업계약이 시작된 1988년 11월 이후 완료 추정비용(EAC)은 3개월마다 3~4억 달러씩 증가했다. 급기야 2년도 안 된 1990년 5월에는 완료 추정비용(EAC)이 54억 달러까지 상승했다. 계약 최고한도가인 47억 달러는 이미 개발 1년 만에 넘은 상태였다.

 미 해군은 A-12가 탄생하면 3년 내에 미 해군 전투기 예산의 70%를 A-12가 소모시킬 것이라고 걱정했다. 걸프전이 발발하기 열흘 전인 1991년 1월 7일, 마침내 딕 체니 국방부장관은 A-12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발표하고야 만다.

 초기 소요가 미 해군 620대, 미 해병대 238대로 함재기 소요만 858대, 미 공군도 400대를 구매하게 돼 총 양산대수는 1258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실물모형도 완성되기 전에 취소된 것이다.

 A-12의 개발 취소는 잘못된 사업관리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구소련 붕괴와 전반적인 국방비 감축 무드라는 환경적인 이유도 결정적인 취소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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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첫 독자개발
       경량 다목적 전투기



이스라엘의 라비(Lavi) 국산전투기 개발 배경에는 크필(Kfir) 전투기가 있다. 크필 전투기는 프랑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자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프랑스 미라지V 전투기를 개조해 개발한 다목적 전투기다.

 외국 전투기의 개조 개발로 전투기 개발의 첫걸음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한 발 더 나아가 전투기의 독자 개발을 추진했다. 독자 개발 전투기 개발 계획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79년이었으며, 공식적인 사업추진은 80년 2월부터 시작됐다.

 라비(Lavi)로 명명된 이 독자개발 전투기는 이스라엘 공군의 대지공격 임무를 담당하던 A-4 스카이호크 공격기와 크필 전투기, F-4 팬텀 II 전투기를 대체할 계획이었다. 따라서 개발 요구도 또한 근접항공지원(CAS)과 전장항공차단(BAI) 임무수행에 중점을 두고 설정됐다. 또한 라비 전투기의 공대공 전투 능력은 기본 임무로서가 아닌 부차적인 임무로 고려됐다.

 라비는 수십 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전투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경량 다목적 전투기였다. 전체적인 형상은 꼬리날개가 없는 무미익 카나드 델타형으로 설계됐고, 측면 형상은 F-16 전투기와 유사한 것이 특징이었다.

 라비의 공허중량은 6.7톤, 최대이륙중량은 16톤급으로 중량면에서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보다 가벼운 편이었고, 전반적인 크기는 F-16 초기형에 해당했다. 다만 일반적인 주익-미익이 아닌 델타익을 적용했기 때문에 주날개 면적이 넓어 날개 면적당 하중은 F-16보다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엔진으로는 개발 초기에 F404 엔진을 한 개 탑재하는 것이 고려됐으나 추후 확장성을 고려해 추력 9톤급의 PW1120 엔진으로 변경됐다. 비행제어 계통은 4중 전자식 비행제어(FBW) 방식으로 기계적인 백업은 없다. 복합재는 카나드와 수직 꼬리날개 등에 적용돼 전체 구조중량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라비의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돼 첫 시제기(B-01)의 초도비행이 86년 12월 31일에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어서 두 번째 시제기(B-02) 초도비행도 1987년 3월에 실시됐다. 이스라엘의 첫 독자개발 전투기 라비는 순조롭게 전력화가 진행될 것만 같았다.

 87년 8월, 첫 번째 시제기(B-01)가 초도 비행에 성공한 지 채 8개월도 지나지 않아 라비 전투기 개발계획은 돌연 취소되고 말았다. 라비 전투기 개발에는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라비 전투기 개발 사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양산 계획 대수가 복좌형 60대를 포함해 총 300대 규모에 달할 정도로 이스라엘로서는 상당히 큰 사업이었으나 이스라엘은 라비 개발비를 전액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긴밀한 대미관계를 이용해 개발비의 약 40%를 미국 정부가 부담한다는 계획을 전제로 라비 개발은 추진됐다.

 미국 정부가 40%의 개발비를 부담하게 됨에 따라 미국은 라비 개발 사업에 대한 통제가 가능했다. 미국은 라비 전투기가 미국산 전투기인 F-16, F/A-18과 수출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것을 우려해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라비 개발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던 미 정부는 미국 국회가 라비 개발비 지원을 중단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비용과 예산상의 이유로 지원을 취소했고 자금 여력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결국 독자개발 전투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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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무장·병력 탑승
    강습헬기로 운용 가능

  미국 시콜스키 사의 UH-60(S-70) 계열 다목적 헬기는 ‘블랙호크’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의 블랙호크 헬기가 탄생하기 전에 시콜스키 사는 이미 S-67 이라는 공격헬기에 블랙호크라는 이름을 사용한 바 있었다.

 AH-56 샤이엔에 버금가는 대형 공격헬리콥터로 탄생했던 오리지널 ‘블랙호크’ 헬기 개발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전에서 UH-1·CH-47은 미 육군에 빼놓을 수 없는 수송전력이었지만 적의 공격에 취약해 손실률이 높았다. 이 때문에 미 육군은 수송헬기에 대한 호위전력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러한 필요에 따라 신형 헬기 개발을 위한 AAFSS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AAFSS(Advanced Aerial Fire Support System) 프로그램은 수송헬기의 호위뿐만 아니라 지상군의 근접항공지원 소요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공격기 개념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근접항공지원을 전담했던 미 공군과 역할이 중복되는 것으로서, 미 육군이 독자적인 공격기를 개발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고성능의 공격기 수준의 헬기를 개발하는 AAFSS 프로그램은 개발이 쉽지 않았고, 미 공군과의 마찰 가능성이 상존했다.

 AAFSS 프로그램의 최종 승자는 결국 록히드 사의 AH-56 샤이엔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초기 개발이 베트남전과 맞물린 관계로 샤이엔 개발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먼저 1970년대는 인플레이션이 극심했기 때문에 신규 대규모 R&D투자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됐었다. 그리고 근접항공지원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 미 공군과의 이견도 역시 샤이엔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A-10 공격기 개발에 예산을 전력투구하고자 했던 미 공군의 입장에서 샤이엔은 불합리하고 과도한 성능의 기체였던 것이다.

 샤이엔의 추락으로 개발지연과 그에 따른 가격상승의 악순환이 계속되자 시콜스키 사는 기존에 개발한 H-3 대형 헬리콥터에 그간 연구했던 복합추진방식을 접목시킨 S-67 블랙호크 공격헬기를 미 육군에 제안했다.

 S-67은 UH-1을 활용한 공격형이 AH-1로 명명됐듯이, 기존 H-3(S-61) 계열의 동력계통을 활용했기 때문에 AH-3으로 명명될 계획이었다. 비행에 필요한 양력을 보조하는 긴 주익에는 다양한 무장 탑재가 가능했고, 동체에는 6명의 무장병력 탑승도 가능했다. 동체에 무장병력을 탑승시키는 것은 러시아의 Mi-24 하인드 헬기와 유사한 설계 개념으로 S-67을 강습헬기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미 육군은 1972년 결국 샤이엔 헬기 개발을 취소시켰다. 미 육군은 기술적인 난도가 높은 대형 헬기보다는 간소하고 저렴한 기종을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에 맞춰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시콜스키 사가 아닌 벨 사였다. 벨 사는 기존의 UH-1의 동력계통을 활용해 개발한 벨 209(AH-1G) 공격헬기를 미 육군에 제안해 베트남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었다.

 경쟁기종이 취소됐을 때 경쟁기종과 유사한 대안을 그대로 운용자에게 제시하기 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운용자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했던 벨 사는 공격헬기의 원조격인 AH-1 코브라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샤이엔이 실패했는 데도 불구하고 샤이엔과 유사한 성능의 S-67 블랙호크를 제안한 시콜스키 사는 또 한번의 실패를 맛보게 됐고, 결국 1990년대에 진행된 코만치 프로그램까지 취소되면서 이후 공격헬기 분야에 다시는 진입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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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스텔스 성능
  96년 1월 초도비행 마쳐



 1980년대 미 육군은 차세대 공격헬기를 다목적 헬기로 개발해 무장·정찰·기동 헬기까지 하나의 기종으로 대체하고자 LHX(Light Helicopter Experimental)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신형 헬기 개발을 통한 구체적인 대체 계획은 AH-1 공격헬기와 UH-1C 건십을 AH-64 아파치로 대체하고, 최종적으로는 LHX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OH-58A/C 카이오와, OH-6 카이유즈 정찰헬기도 OH-58D 카이오와 워리어 AHIP로 대체한 후 최종적으로 LHX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놀라운 사실은 다용도 수송헬기로 사용되는 UH-1과 UH-60까지도 LHX 다용도형으로 통일한다는 것이었다. 대형 수송헬기를 제외한 모든 미 육군항공대 헬기를 LHX 계열 하나로 대체하겠다는 이 야심찬 계획은 결국 냉전시대의 꿈을 안고 84년 확정돼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LHX 개발에는 보잉·시콜스키팀과 벨·맥도널 더글라스팀이 경합을 벌였고, 91년 4월 5일 보잉·시콜스키팀이 경쟁에서 승리해 개발이 본격화됐다. RAH-66 코만치로 명명된 이 신형 헬기는 시제기가 95년에 출고됐고, 96년 1월 4일에 초도비행이 성공적으로 실시됐다.

RAH-66의 가장 큰 특징은 스텔스 성능이다. 적의 종심 깊숙이 침투하는 전투 정찰임무에서 높은 생존성을 얻기 위해 코만치는 높은 스텔스 성능이 요구됐다. 이를 위해 코만치에는 F-117 스텔스기와 같은 다면체 방식의 설계가 적용됐고, 전파 반사와 소음이 큰 테일로터를 없애기 위해 패네스트론 방식이 적용됐다. 또 인입식 착륙장치와 대규모로 복합소재를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스텔스 설계가 이뤄졌다.

그 결과 코만치는 AH-64 아파치보다 레이더 반사를 66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었고, 적외선은 2.75분의 1, 소음은 1.6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생존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스텔스 성과와 더불어 코만치를 미 육군항공의 혁신적인 무기체계로 만든 것은 네트워크중심전 개념을 적용시킨 항전체계 덕분이었다. 코만치는 미 육군의 플랫폼 중 공중과 지상무기체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완전 디지털화된 시스템을 갖춘다는 목표로 개발됐다.

이를 위해 고성능 컴퓨터를 내장하고 보안 디지털통신체제를 갖춰 육군의 항공 및 지상부대가 원하는 공통작전정보 및 영상을 정확히 전송하도록 개발됐다. 신속한 전장 정보 공유능력으로 다른 플랫폼들보다 더 많은 목표물을 인식하고 교전할 수 있는 능력과 스텔스 성능까지 갖춘 코만치는 지상의 전장을 압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냉전 말기에 구소련의 신형 공격헬기와의 교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공대공 전투 성능은 물론 대규모 기갑전을 수행할 만큼 충분한 공격능력과 생존성을 갖춘 헬기를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투형은 물론 병력수송이 가능한 다용도형까지 감안해 초기에 설계가 이뤄졌기 때문에 코만치 프로그램의 기술적인 위험도는 대단히 큰 것이었다.

 96년 배치를 목표로 84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코만치는 결국 전력화가 2011년으로 연기됐다. 생산대수도 85년 당시 5023대에서 2002년에는 650대 수준으로 급감했다.개발일정의 반복적인 지연으로 프로그램 코스트는 급증하게 됐고, 긴 개발기간 동안 변화된 전장 환경과 운용개념은 다시 기술적 요구수준과 코스트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무리한 기술적 요구수준과 프로그램 관리, 일정의 문제로 의회의 집중공격을 받아온 코만치는 양산대수 축소에 따른 단가의 급등으로 무기체계로서의 효율성을 의심받아 결국 2004년 2월 27일 개발이 전면 취소됐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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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야심차게 개발한 
       차세대 실험 전투기


Su-47 베르크트(Berkut) 전투기는 F-22 랩터로 대표되는 5세대 미국 전투기들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러시아가 야심차게 개발한 실험 전투기다.

 1997년 9월에 처녀비행을 마친 Su-47은 개발 초기에 실험기 명칭인 S-37로 불려왔지만, 2002년에 명칭이 변경돼 Su-47로 최종 결정됐다. 실험 전투기인 Su-47은 미국의 ‘X’ 시리즈와 같은 단지 연구용이 아니고 기내에 고정무장과 무장탑재 능력을 갖춘 실전적인 모델이다.

 미국의 F-22가 ATF 계획으로 1980년대부터 추진됐듯이 러시아의 차기 전투기 계획은 1980년대부터 I-90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I-90 프로그램은 2000년부터 보다 진보적인 개념의 PAK FA 프로그램으로 변경됐고, PAK FA의 주계약자가 2002년 3월에 수호이로 결정됨에 따라 향후 등장할 기종도 Su-47을 토대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단 Su-47의 특징인 전진익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Su-47의 기동성은 매우 뛰어난 편인데, 이것은 Su-27의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에 사용된 항공 역학적 기술이 Su-47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Su-47의 캐노피와 랜딩기어, 수직미익 등 일부 구성품은 Su-27의 것을 채용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Su-37보다 발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아음속에서의 기동성은 매우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전진익 특유의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재래식 형태의 전투기들과 달리 카나드·주익·수평미익 등 3개의 날개가 모두 양력을 발생시키는 공력 설계와 전자식 비행제어의 결합으로 Su-47은 높은 받음각 성능과 선회율 특성을 보이고 있다.

 Su-47의 외관상 가장 큰 특징은 전진익이다. 전진익은 같은 면적의 후퇴익에 비해 높은 양항비·선회율, 고받음각에서의 안정성, 단거리 이착륙 성능 등이 유리하다. 그리고 낮은 실속속도와 우수한 스핀 특성, 후퇴익에서 주로 발생하는 익단실속이 없기 때문에 기동성면에서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어와 소재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날개 형상이므로 아직은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동체는 주로 티타늄과 알루미늄 합금으로 구성되며, 복합재는 13% 정도로 대량 사용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기종들과 달리 주익의 복합재 비율은 90%에 달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전진익의 공력적 특성 때문이며, 복합재의 섬유 방향을 교차시켜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

 5세대 전투기답게 Su-47은 본격적인 스텔스 개념이 적용됐다. 무장의 내부 탑재와 더불어 전진익 고유의 스텔스성이 Su-47의 스텔스 성능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공기 흡입구의 팬블레이드가 정면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레이더 흡수물질(RAM)을 외피에 도포하는 등 다양한 스텔스 기술이 적용됐다.

 Su-47 전투기는 러시아가 1980년대부터 시도한 I-90 차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I-90 프로그램은 PAK FA 프로그램으로 변화돼 결국 Su-47은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개발 주체는 동일하므로 Su-47에 적용된 기술은 러시아의 차세대 전투기에도 연계해 적용될 것이다. Su-47은 MiG 1.44와 더불어 러시아의 5세대 전투기가 어떠한 성능을 갖추고 탄생하게 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전투기라고 의미를 둘 수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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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5세대 전투기
      개발 목적의 시제기


 

 러시아의 전투기는 과거 소련 시절부터 미그 설계국과 수호이 설계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21세기를 앞두고 양 설계국은 5세대 전투기 개발을 목표로 실험 전투기를 설계했다. 수호이 설계국에서 개발한 Su-47과 MiG 설계국에서 설계한 MiG 1.44(사진)는 이러한 목적의 대표적인 실험전투기다.

 MiG 1.44의 공개 행사는 모스크바 근교 주콥스키 비행장에서 1999년 1월 12일에 실시됐고, 초도비행은 1999년 3월에 이뤄졌다. 2002년 4월, 러시아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이끌 제작사를 미그가 아닌 수호이 측으로 공식 발표했다. 공식 발표에 의해 향후 러시아 전투기는 수호이 측이 이끌겠지만 차세대 전투기는 수호이 단독 개발이 아닌 미그와 공동개발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MiG 1.44를 통해 실증된 신기술은 역시 차세대 전투기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MiG 1.44는 쌍발 단좌형식의 대형 다목적 전투기다. 주익은 중익배치이고, 쌍수직미익에 카나드를 채용하고 있다. 주익 형태는 델터익에 가까우며, 동체 하부의 안정익(Ventral Fin)도 갖추고 있다.

 공기흡입구는 유로파이터를 연상시키듯 동체 하부에 위치한다. 흡입구 덕트의 형상은 ‘S’자 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면에서는 엔진의 터빈블레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레이더파를 대량으로 반사하는 터빈블레이드를 숨길 수 있어 적 레이더에 포착되는 면적인 레이더단면적(RCS)을 줄여 스텔스 성능에 도움을 준다.

 MiG 1.44의 스텔스 설계는 비단 공기흡입구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MiG 1.44는 동체 내에 무기고를 갖추고 있어 기 외 무장장착에 의한 레이더파 반사를 줄일 수 있다. 또한 기체 각 부에 복합재와 레이더흡수재(RAM)를 다량으로 사용해 스텔스 성능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설계로 인해 MiG 1.44의 전체적인 스텔스 성능은 러시아 전투기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추측된다.

 엔진은 Su-47과 마찬가지로 AL-41F 추력 편향 엔진을 탑재할 계획이었지만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AL-31 엔진을 탑재했다. AL-41F 엔진은 노즐이 상하 15도로 움직이고, 초음속 순항이 가능하도록 최대 18톤급의 추력을 가질 계획이었다.

 초음속 순항 능력은 단지 속도가 빠르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항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적 위협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전술적으로 생존성이 높아지며, 무장의 사정거리를 증가시킬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스텔스성 관점에서 적외선을 대량으로 방사하는 후기연소기 사용을 줄일 수 있어 적의 적외선 탐지에 포착될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MiG 1.44의 레이더는 N014가 사용될 계획이었다. N014는 합성개구레이더(SAR) 모드를 갖추고 있어 향상된 공대지 교전이 가능하고, 20개의 목표물의 동시 추적, 그중 6개 표적에 대한 동시 교전 능력을 갖춰 향후 등장할 PAK FA 차세대 전투기에 적용되리라 예상된다. 시제기이기 때문에 무장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동체 내 무기고에 R-73(AA-11)과 R-77(AA-12)을 혼용해 높은 공대공 전투능력을 갖출 계획이었다.

 MiG 1.44는 기술실증을 목적으로 한 실험전투기이지만 향후 러시아의 5세대 전투기가 어떠한 성능을 갖추고 탄생하게 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전투기라고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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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공군의 마하 3급
        고속 장거리 요격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 간의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 경쟁에 돌입한다. 핵무기 투발수단으로 가장 먼저 이용된 것은 전략폭격기였으며, 이후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이 등장해 미국과 소련은 상호 확증파괴(MAD)가 가능한 핵전력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양국은 핵무기가 자국 영토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지만 당시 기술로 탄도탄의 요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탄도탄보다는 전략폭격기에 대한 요격체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특히 적 폭격기가 요격되더라도 자국 영토에는 피해가 없도록 원거리에서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요격기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배경 아래 1958년 미 공군은 작전운용서 GOR-114에 LRI-X 프로그램을 명시하고 신형 장거리 요격기 개발을 추진했다.LRI-X 프로그램 초기에는 미사일과 유사한 형상의 리퍼블릭 XF-103이 미 공군에 제안되기도 했지만 개발상의 문제로 채택되지 못했다. 기존의 F-89·F-101 전투기를 대형화하는 안이 뒤이어 등장했지만 마하 3급의 전투기는 기존 기체의 개조로 달성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LRI-X 프로그램의 설계안으로 채택된 기종은 노스 아메리칸의 설계안을 토대로 한 XF-108 전투기였다. XF-108 체계의 특징은 마하 3의 속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J93 엔진과 GAR-X 핵탄두 공대공 미사일, AN/ASG-18 레이더 화력통제장치로 요약된다.AN/ASG-18 펄스도플러 레이더는 YF-12 블랙버드 전투기에도 채택됐던 대형 레이더로 탐지거리가 500마일이 넘는다.

AN/ASG-18의 강력한 성능 덕분에 XF-108은 요격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지상의 방공레이더를 제한적으로 보완하는 역할도 고려됐다.XF-108의 주요 무장은 GAR-X 공대공 미사일이다. 훗날 GAR-9(AIM-47A)로 명명된 이 장거리 미사일은 마하 6의 속도에 210㎞ 이상의 사정거리를 갖는 대형 미사일이었다. 공대공 미사일로는 특이하게도 액체연료를 사용했던 GAR-X는 당시 방공개념을 반영해 일반 탄두뿐만 아니라 250㏏급의 핵탄두도 탑재가 가능했다.

최대추력 13톤의 J93 엔진을 쌍발로 탑재한 XF-108은 고도 24㎞에서 시속 3187㎞,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요격임무를 수행하고, 줌업 상승으로 최대 30㎞까지 상승한다는 성능이 요구됐다. 아울러 외부연료탱크 탑재 없이 1852㎞ 이상의 작전반경이 요구돼 기체는 대형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었다.

1959년에 제작된 XF-108 실물크기 모형에 의해 예상된 중량은 공허중량이 22톤, 최대이륙중량이 46톤에 이르렀다.무장은 속도와 상승 성능을 고려해 동체 내부에 탑재되며, GAR-X 대형 공대공 미사일 3발을 표준으로 탑재하도록 설계됐다. 마하 3급의 고속 장거리 요격기로 야침차게 개발이 추진되던 XF-108은 1959년 9월에 결국 예산문제로 취소되고야 말았다.

XF-108의 개발 취소에는 당시의 심각했던 국방예산 상황이 외부요인으로 작용했으나 경제성이 고려되지 못한 XF-108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비록 XF-108 기종은 취소됐지만 XF-108 탑재를 위해 개발되던 AN/ASG-18 레이더와 GAR-X 미사일은 예산의 압박에도 살아남아 훗날 A-5·F-111·F-14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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