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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7 YA-9 근접항공지원 공격기 (1)
  2. 2011.04.07 A-12 어벤저 II 공격기

A-10기와 경쟁에서 패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근접항공지원(CAS)에 특화된 공격기라면 미 공군의 A-10, 러시아의 Su-25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A-10 공격기는 1991년 걸프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임으로써 명성을 굳혔다. 이번에 소개할 YA-9 공격기는 이 A-10 공격기와 경쟁에서 패해 역사 속에 묻힌 기종이다.

 YA-9와 A-10 공격기는 미 공군이 67년부터 시작한 A-X(Attack Experimental) 사업을 통해 개발됐다. 60년대 나토군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대량의 전차부대를 보유한 바르샤바조약기구 지상군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였다. 당시 서유럽의 나토군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항할 충분한 양의 전차를 확보하지 못했다. 다양한 종류의 대전차 전력을 고심하던 나토군은 대전차 공격기와 공격 헬기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미 공군은 전차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저가의 대전차 공격기를 개발해 대량의 전차를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구상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A-X 사업이었다.

 A-X 사업으로 탄생하게 될 공격기는 비포장의 야전 비행장에서도 운용이 가능해야 했다. 그리고 전방의 화력지원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전장 상공에서의 장시간 체공능력이 요구됐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F-4 팬텀 전투기에서 A-1 스카이레이더 공격기까지 다양한 기종을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투입했다. 그 결과 프로펠러 공격기였던 A-1이 오히려 제트 전투기들보다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더 효과적임이 판명됐다. 비록 무장탑재량도 적고, 속도도 느렸지만 저공에서 장시간 체공할 수 있었던 A-1 공격기를 지상군이 더 선호했던 것이다.

 총 6개 항공기 제작사가 A-X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시제기 제작업체로 선정된 것은 노스롭 사와 페어차일드 사였다. 시제 항공기 명칭은 각각 YA-9와 YA-10으로 명명됐고, 72년부터 본격적인 시험평가가 이뤄졌다.

 베트남전 경험을 통해 저고도에서 작전하는 항공기는 다양한 구경의 대공화기에 노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새로 개발되는 공격기는 대공화기에 대한 생존성이 특히 강조됐다. 이러한 대책으로 양 기종은 조종석에 23㎜ 탄의 직격에도 견딜 수 있는 욕조형 방탄판을 탑재해 조종사의 생존확률을 높였다.

 A-10과 YA-9를 비교하면 형상 측면에서 엔진 위치와 꼬리날개가 가장 차이가 난다. A-10은 엔진을 후부 동체 위에 각각 떨어뜨려서 얹은 형태로 설계했다. 특이하게도 동체 위에 엔진을 위치한 이유는 앞과 뒤의 날개가 엔진을 가려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엔진 뒤에 위치한 수직 꼬리날개는 엔진으로부터 방사되는 적외선을 감추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유사시 한쪽 날개가 피탄되더라도 조종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꼬리날개는 두 개로 설계했다.

 독특한 외형의 A-10과 달리 YA-9는 일반적인 제트기 형상으로 설계됐다. 엔진은 주날개 안쪽에 위치했고, 수직 꼬리날개도 한 개였다. YA-9는 한국 공군도 장기간 운용했던 세스나 사의 A-37B 공격기를 마치 그대로 확대시켜 개발한 듯한 외형을 보였다. YA-9는 A-10보다 최대속도를 높여 생존성 향상을 도모했지만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못했다.

 양 기종의 시험평가 결과, 미 공군은 73년 1월 YA-10을 차기 공격기로 선정했다. 생존성과 양산 비용 측면에서 YA-10이 YA-9보다 우수했던 것이다. YA-9 공격기는 평범한 외형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YA-9와 유사하게 설계된 러시아 Su-25 공격기는 다양한 국가에 수출돼 대표적인 주요 공격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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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美, 1980년대말
    개발 추진된 스텔스機


A-12 어벤저II는 미국이 1980년대 말에 개발을 추진하다 포기한 스텔스기 이름이다. 마치 UFO를 연상시키는 외형의 이 스텔스기는 당시 미 해군의 주력 공격기였던 A-6 인트루더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됐다.

 A-6은 초기형인 A-6A형이 1963년에 실전배치된 이래 1997년까지 미 해군의 대표적인 함재 공격기였다. 약 8톤의 외부무장을 탑재하고도 1600㎞의 전투행동반경을 보였던 A-6의 공격력은 A-7 콜세어II 공격기나 F/A-18 호넷 전투기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A-6의 대를 이어 미 해군은 A-6 수준의 공격능력을 갖추면서도 미래 전장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생존성이 강화된 ATA(Advanced Tactical Aircraft) 사업을 계획했다.

 ATA 사업에는 업체들이 2개의 팀을 구성해 미 해군에 설계안을 제시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맥도널 더글러스로 구성된 GD팀은 삼각형 모양의 기체를 제안했고, 노스롭과 그루먼·LTV로 구성된 노스롭팀은 B-2 스텔스 폭격기를 축소한 듯한 형상의 기체를 제안했다. 결과는 GD팀의 승리였다. GD팀이 더 낮은 비용에 높은 성능을 제시했던 것이다.

 ATA 사업으로 탄생할 항공기는 F-117보다 뛰어난 스텔스 성능과 무장능력이 요구됐다. 미 해군은 A-6보다 2배의 신뢰도를 기대한다는 의미에서 명칭도 6의 2배를 곱해 A-12로 명명했다.

 A-12는 삼각형 모양의 다면체 설계와 대형의 내부 무기고를 탑재해 레이더 반사 단면적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엔진은 쌍발로 결정됐고, A-6보다 긴 작전반경이 요구돼 삼각형의 전익기(Flying Wing) 형태로 설계가 진행됐다.

 A-12는 최대이륙중량 31톤에 내부연료만 10톤 이상 탑재한다. 충분한 내부연료량 덕분에 GD팀은 노스롭팀 설계안이 전투행동반경 1570㎞를 보였을 때 전투행동반경 약 2030㎞라는 높은 성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노스롭팀보다 긴 항속능력의 스텔스 공격기를 대당 3100만 달러에 공급하겠다는 GD팀의 설계안은 미 해군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텔스기 개발 경험이 없었던 GD팀은 신기술을 대거 적용하면서도 개발비를 39억 달러로 예측했다. 그러나 사업계약이 시작된 1988년 11월 이후 완료 추정비용(EAC)은 3개월마다 3~4억 달러씩 증가했다. 급기야 2년도 안 된 1990년 5월에는 완료 추정비용(EAC)이 54억 달러까지 상승했다. 계약 최고한도가인 47억 달러는 이미 개발 1년 만에 넘은 상태였다.

 미 해군은 A-12가 탄생하면 3년 내에 미 해군 전투기 예산의 70%를 A-12가 소모시킬 것이라고 걱정했다. 걸프전이 발발하기 열흘 전인 1991년 1월 7일, 마침내 딕 체니 국방부장관은 A-12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발표하고야 만다.

 초기 소요가 미 해군 620대, 미 해병대 238대로 함재기 소요만 858대, 미 공군도 400대를 구매하게 돼 총 양산대수는 1258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실물모형도 완성되기 전에 취소된 것이다.

 A-12의 개발 취소는 잘못된 사업관리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구소련 붕괴와 전반적인 국방비 감축 무드라는 환경적인 이유도 결정적인 취소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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