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 강습 착륙’ 행운의 여신도 英 택했다



 노르망디 캉(Caen) 운하 다리 위의 독일군 보초 핼무트 일병은 1944년 6월 6일 0시16분쯤 가까운 곳에서 “쿵” 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시커먼 고래 같은 물체를 보았다.

깜짝 놀란 핼무트는 순간적으로 대공포에 맞아 추락하는 연합군 폭격기로 착각했다. 그러나 수십 명의 영국 공정부대원이 갑자기 귀신같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뒤이어 2호, 3호기의 글라이더(Horsa)가 성공적으로 착륙하며 연합군 진격과 독일군 증원차단에 꼭 필요한 캉 운하와 오르느(Orne) 강에 있는 2개의 교량은 순식간에 영국군에게 점령당했다.

야간착륙 불가능할 듯이 보여

 영국군 글라이더가 최초 착륙한 캉 운하의 제방 뚝길의 폭은 30m 내외에 불과하다. 더구나 주변에는 늪지가 있어 고도로 숙달된 글라이더 조종사가 아니고는 야간착륙이 불가능할 듯 보였다. 특히 2호 글라이더는 착륙 중 동체가 파손돼 일부 대원들은 밖으로 튕겨 나가기도 했다.

독일군도 연합군 강습착륙에 대비해 장애물 설치를 위한 말뚝 웅덩이까지 며칠 전 파놓고 있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진취적이고 모험심 강한 영국의 손을 들어 줬다. 방심하던 독일군은 어이없이 제대로 대항 한번 못 해보고 전략적 요충지를 영국군에게 넘겨주게 됐다.

 전쟁 후 이 교량은 전설 같은 강습작전 성공을 계기로 영국 공정부대의 심벌인 페가수스(Pegasus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장에는 지휘관 존 하워드 소령의 흉상과 글라이더 착륙지점 표지석이 있으며 날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獨, 공정부대 괴멸 찬스 놓쳐

영국군 제6공정사단은 선도부대의 강습작전으로 주요 교량을 성공적으로 점령한 후 대규모의 후속 공정작전을 시행했다. 아울러 독일군도 6월 6일 오전 10시쯤, 정예 제21기갑사단을 오르느 강 기슭으로 보내 공격대형으로 전개시켰다. 그러나 그 순간 21기갑사단에 캉으로 철수해 연합군 기갑부대 전진에 대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결국 독일군은 전차에 무방비로 노출된 영국 공정부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게 된다.

 먼저 착륙한 공정부대를 위한 각종 전투물자가 즉시 보급되기는 무척 어렵다. 영국군은 낙하산의 색상으로 보급품의 종류를 구분했다. 즉 청색은 식량, 황색은 의료품, 적색은 탄약, 백색은 전투장비 등으로 쉽게 식별토록 했으나 강한 바람과 독일군의 방해로 일부 낙하산만이 회수 가능했다. 특히 수많은 부상자에 대한 치료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의료기구의 부족으로 면도용 칼을 이용해 마취없이 중상자들을 수술하기도 했다.

붉은 베레 장병들 영웅담으로 가득

 노르망디 상륙작전부터 베를린 진격까지 공정부대는 항상 선두로 가장 위험한 전쟁터에 있었다. 페가수스 다리 옆의 공정부대 기념관(British Airborne museum)은 알려지지 않은 붉은 베레 장병들의 영웅담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영국 공정부대 내의 프랑스·캐나다·폴란드 장병들의 활약상도 각종 기록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해마다 6월 6일이 되면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참전 노병과 유럽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가족과 자유의 고귀한 가치를 위해 이곳에서 피를 뿌린 전우와 전몰장병들을 위해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연다.

 페가수스 다리 입구 핼무트 일병이 서 있었던 초소 옆에는 독일군의 대공 기관총이 녹슬고 있다. 주변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에는 온통 군인 마네킹과 전쟁기념품을 전시하고 있어 이곳이 과거의 격전지임을 알려준다. 생생한 영국 공정부대의 역사를 알 수 있어 여행의 피로는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외딴 정류소에서 버스를 한동안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주말 오후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단다. 70여 년 전 강한 바람과 적의 대공포화로 인해 목표지역을 한참 벗어나 엉뚱한 곳에 떨어져 홀로 낙오자가 된 공정대원의 심정을 상상하며 캉 시내를 향해 터벅터벅 걸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내 목숨을 노리는 독일군 저격병이 없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리고 내일은 노르망디를 떠나 개전 초 독일의 구데리안 기갑부대가 질풍노도로 프랑스를 공격해 온 스당지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기로 마음먹었다. 

[Tip]공정부대의 영웅 하워드 소령은?-헬멧에 총탄 맞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   

페가수스 강습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하워드 소령은 전쟁 전 경찰관 신분이었다. 그는 영국 국방의용군(TA : territorial army, 평시 일정 군사교육을 받은 후 민간신분으로 있으며 본인 희망 시 현역 근무도 가능하다. 전시에는 즉각 동원돼 현역으로 편입되는 영국 고유의 예비군 제도임)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공정부대로 동원됐다. 그는 작전 당시 교량 위 전투에서 헬멧에 총탄을 맞았으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현재 구멍 뚫린 그의 헬멧은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그 후 하워드 소령은 다른 전투에서 부상당해 영국으로 후송됐으며 거의 완쾌단계에서 큰 교통사고로 결국 군을 떠나게 된다. 전역 후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페가수스 전투 기념행사에 불편한 몸으로 참석했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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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랴 !”
‘붉은 악마’ 함성 들리는 듯…




영국군 공정부대 역사관에 들어서면 몇 가지의 인상적인 전시물을 보게 된다. 공정부대 상징인 붉은 베레들의 제2차 세계대전, 포클랜드 전쟁, 걸프 전쟁에서의 영웅적인 전투 사례와 당당하게 낙하산을 메고 공정 대원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군견 전시물이다. 특히 무공훈장을 받은 군견과 공정부대원들 사이에 얽힌 사연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 더구나 한국 축구대표팀의 별칭인 ‘붉은 악마’는 영국 공정부대의 별명과 우연히도 일치한다.


공정부대 작전을 위한 영국의 걸작품 대형 글라이더(Horsa).



유럽 진공을 염두에 둔 처칠 수상은 독일군 후방지역 작전을 위한 대규모의 공정부대 편성을 지시한다. 영국군은 3개 사단 규모의 공정군단을 창설했으나 작전에 필요한 엄청난 수의 수송기는 가질 수 없었다. 결국 목재와 천으로 만든 호사(Horsa)라는 대형 글라이더를 생산해 공정작전에 대대적으로 투입했다.

영국 청년들 조국 위해 앞다퉈 지원

이 무동력 글라이더들은 수시로 병력과 전투 장비를 잔뜩 싣고 수송기에 견인돼 도버해협을 횡단한다. 불운하게도 순간적인 강풍, 수송기 조종사의 실수, 독일군 대공 포화 등으로 수많은 호사들이 바다에 추락하거나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더구나 운 좋게 유럽대륙으로 건너온 글라이더들도 착륙 간 바위나 큰 나무에 충돌하면서 또다시 많은 부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공정부대는 전원 지원자들로 구성됐다. 단지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일반 전투부대와는 달리 멋있는 붉은 베레모를 착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정부대에 지원하고자 몰려드는 영국 청년들이 끊이지 않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공정군단은 병력충원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일부 입대 청년의 집에서 기르던 영리한 애견도 동시에 훈련소로 들어와 교육이 끝나면 주인과 함께 낙하산을 메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낙하산을 등에 진 공정부대 군견과 무공훈장(오른쪽).



부대 군견은 주인 따라나선 애견

이런 훈련된 군견은 적지에서 경계견과 수색견으로 맹활약했다. 현재도 9000여 명의 영국군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있는데 일부 군견들은 낙하산병과 같이 전쟁터에 투입되기도 한다.

 전쟁 후 훌륭한 전공을 세운 군견들을 골라 무공훈장을 수여했고 그 모형이 공정부대 역사관에 전시돼 있다. 위기에 빠진 조국을 위해 앞다퉈 공정부대로 몰려온 청년들의 애국심, 심지어 전쟁터로 나가 주인과 영국을 위해 포화 속을 누볐던 영국 개의 사연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영국은 자연조건은 열악하고 인구도 한반도보다 더 적은 60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과학 기술력과 더불어 국민들의 애국심, 불굴의 상무정신으로 영국을 세계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포상받은 군견 앞에 뼈다귀형 상품 또한 전시돼 있다. 훈장 못지않게 개가 좋아하는 소 갈비뼈를 실질적인 보상으로 배려하는 영국인들의 익살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600여 대대원들 중 150명만 살아

 1944년 6월 6일 새벽, 영국 제6공정사단 제9대대원 600명은 치열한 독일군의 대공포화를 회피하고 있는 수송기 안에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며 뒹굴고 있었다. 더더욱 끔찍한 것은 인접 수송기가 고사포탄에 맞아 온몸에 불이 붙은 동료들이 창공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참혹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제9공정대대 임무는 스워드(Sword) 비치로 상륙하는 영국군을 위협하는 메르빌(Merville)의 독일군 요새포대를 폭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공포화와 강한 바람으로 낙하간 대대원들은 무려 130㎞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상당수의 인원은 강풍에 떠밀려 북대서양의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빨려들어 가기도 했다. 농가 지붕 위에 떨어지며 양쪽 발목을 삔 오토웨이 대대장이 절뚝거리며 부하들을 집결시키니 150명만 확인할 수 있었다. 더구나 후속해서 박격포·대전차포 등 중장비를 싣고 오도록 한 글라이더 대부분이 착륙에 실패해 요새포대 제거에 필수적인 폭약조차도 부족했다.

임무 절대 포기 않았던 붉은 악마

 작전을 계속할 것인가? 임무를 포기할 것인가? 여기에서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랴?!”라는 부대구호를 가진 붉은 악마들의 독한 근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야간에 오직 대검 하나만 빼어 들고 망설임 없이 부대원들은 지뢰가 무수히 깔린 철조망 안으로 뛰어들었다.

지뢰지대를 돌파하고 요새 외곽의 대전차호 앞에 이르렀을 때 독일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몇 명의 병사가 무엇에 홀린 듯 괴성을 지르며 독일군의 기관총 왼쪽으로 달려들어 장렬한 육탄전이 벌어졌다. 죽음을 불사하고 요새진지로 뛰어든 영국군은 벙커 안으로 수류탄을 집어넣으며 독일군 포대를 제압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포탄창고의 대폭발과 함께 독일군과 뒤엉켜 혈투를 벌이고 있던 영국군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전이 끝난 후 애타게 부르는 대대원들의 이름에 대답할 수 있는 장병은 불과 65명 뿐이었다. 지금도 노르망디 스워드 비치에서 멀지 않은 메르빌의 독일군 포병 진지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포병 진지 입구에는 오토웨이 중령 흉상과 C-47 수송기가 전시돼 있다. 또한 영국 공정부대의 명예를 위해 주저함 없이 적진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바친 영국 청년들을 추모하는 꽃다발들이 전사자의 명단비석과 수송기 좌석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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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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