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문서 주던 곳에서 뒤바뀐 운명, 항복문서 받아내다

 

 

 

1940년 5월, 프랑스가 기습적으로 독일군 공격을 받아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벌어진 이해 못 할 실제 상황이다. 당시 프랑스군 전선 사령부 유선통신은 지역 우체국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전화교환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전통적인 프랑스의 관습은 점심 후 항상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휴식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교환원들은 빗발치는 군부대의 전화 요청에 자신들의 오후 차 마시는 시간을 도저히 가질 수가 없었다. 이에 반발해 교환원 대표는 부대를 방문해 12시부터 14시까지의 점심시간을 지켜 줄 것을 부대장에게 강력히 요청했다. 결국, 그 시간에 프랑스군 사령부는 예하부대에 작전지시를 할 수 없었다. 교환원들은 전쟁보다 자신들의 차 마시는 시간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출처; 전격전의 전설, 칼 하인츠 프리즈 지음).

 

 

 콩피에뉴 숲 속에 건립돼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영웅 포쉬 장군 동상.

 

 

 

 ◆ 전쟁보다 휴식이 우선인 전화교환원


 1940년 6월 4일 비극적인 당케르크 철수작전이 끝나면서 전선에서는 많은 프랑스군이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프랑스 수도 파리는 평화로웠다. 몇 차례 독일 공군기들이 파리 상공에 나타나 폭격을 가했지만, 낙천적인 시민들은 전쟁을 그다지 현실적인 문제로 느끼지 않았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주요 시설에 피해가 발생해도 “이럴 리가 없을 텐데···”라는 일종의 비현실적인 생각에 젖어 있었다. 샹젤리제 호텔 로비에는 프랑스 위기를 화제로 우국충정을 늘어놓는 선남선녀들은 많아도 국가를 위해 실제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지 전쟁의 문제를 자기와는 상관 없는 먼 나라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6월 10일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프랑스는 파리를 ‘비무장 도시’로 선포한다. 무능한 프랑스 정치인들이 독일에 대항하는 아이디어라고 내놓은 것이라곤 바로 이 정책 하나뿐이었다.

1940년 6월 14일 독일군은 파리를 총성 한 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당당하게 샹젤리제 개선문으로 행진하면서 점령했다. 거대한 만(卍) 형태의 독일 깃발이 개선문과 에펠탑 정상에 게양됐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1944년 8월 25일 연합군이 또다시 파리를 해방할 때까지 비참한 패전국 국민의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프랑스군 공식문서에는 120만 명이 독일군 포로가 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정확한 사망자의 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40여만 명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 기간 중 독일 육군의 피해는 겨우 2만1000여 명에 불과했다.

 

 

 ◆ 콩피에뉴 침대 기차 칸 의도적으로 선정


 1940년 6월 22일, 프랑스 항복 대표단은 전날부터 독일군에 의해 약 30시간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녔다. 녹초가 된 그들을 히틀러가 데리고 간 곳은 프랑스 콩피에뉴 숲 속 빈 공터였다.

이 장소는 1918년 프랑스 포쉬 원수가 독일로부터 1차 대전의 항복문서를 받은 바로 그 현장이었다. 극적 효과를 즐기는 히틀러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독일이 22년 전 굴욕적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바로 그 열차는 특별 박물관 안에 잘 보존돼 있었다. 히틀러의 명령으로 박물관 벽이 헐리고 그 침대차는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콩피에뉴 숲에 세워진 거대한 프랑스의 1차 대전 승전 기념탑은 독일 공병대에 의해 폭파되며 산산조각이 났다.

 히틀러가 프랑스 대표에게 요구한 항복조건은 가혹했다. 첫째, 프랑스 영토의 절반은 독일이 직접 통치하며 나머지는 비시 괴뢰정권이 관할한다. 둘째, 프랑스가 보호하는 반 나치 망명자들을 독일로 전원 강제송환토록 한다. 셋째, 프랑스 함대는 독일·이탈리아군 감시 아래 무장해제를 한다는 것이었다. 패전국 프랑스는 승전국 요구에 오로지 순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항복조건 때문에 어제의 동맹국 영국과도 프랑스는 해군함정 처리문제로 갈등을 빚게 된다.

일부 프랑스 함정은 해외로 탈출하기도 했지만 대형함 4척은 정박지에서 영국 해군의 포격으로 격침당하며 1267명의 프랑스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비시 정권 수반 페텡은 영국과의 외교관계도 끊었다. 어제까지 피로 맺은 영·불 동맹이 이제는 원수지간으로 변한 것이다. 페텡 원수는 오래전 프랑스 육사에서 드골 생도를 교육했으나 바로 그 드골은 전쟁 중 영국에서 망명정부의 수반으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게 된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드골은 자신의 스승을 프랑스 법정에 세워 사형 선고를 받게 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두 차례 전쟁에서 교대로 항복 조인을 한 침대차 보관 기념관.

 

 

 

◆ 항복문서 쓴 침대차 창고 안에 숨겨져

 

 치욕의 항복문서를 주고받았던 침대차는 부끄러운 심경으로 창고 안에 숨어 있다.독일과 프랑스 간 역사적으로 얽히고설켜 복잡한 사연을 지닌 콩피에뉴 숲은 파리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도착역에서 콩피에뉴까지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택시뿐이다. 울창한 숲 속으로 한참 들어가면 넓은 공원형태의 광장이 나온다. 얼마나 택시기사를 기다리게 해야 할지 막연하다. 30분 정도의 대기시간을 약속하고 목표물을 찾아 뜀박질하는 수밖에 없었다. 철로를 따라 숲 속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차 대전의 프랑스 전쟁영웅 포쉬 원수의 동상이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군의 항복을 받았던 포쉬 장군은 프랑스 국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분노의 눈빛으로 2차 대전 시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했던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광장 끄트머리의 침대차 보관 기념관은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겨울철 여행 비수기로 방문객은 아무도 없었고, 관리하는 직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흡사 프랑스의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가 서린 그 자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은 듯 항복 조인 열차는 깊숙한 창고 속에 숨어 있었다. 까치발로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기념 표지석의 설명문만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또다시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향토예비군 창설 3주년 및 제2회 예비군의 날 기념식이 전국 3만여 명의 예비군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성
대히 거행되고 있다.(1971년 4월 3일)

 

 

국방일보 DB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예비군훈련에 참가한 서울시 동대문구 예비군들이 정부의 장발일소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호응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1979년 4월 2일)

 

 

국방일보 DB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고저 차 심하고, 지면 거친 아프간 지형에 딱’

 

 

고저 차가 심하고 지면이 거친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형.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가 계속되면서 미군은 산악용 전투화 선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어느 나라의 군용 장비나 다 그렇지만, 미국 역시 군용 장비, 특히 개인장비의 경우 현재 가장 격전이 치러지는 곳을 중심으로 변화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 중 정글 장비가 크게 늘어난 것도 그렇지만 최근에도 2003년부터 약 6년간 미군 보병 장비는 중동 사막지역에서의 사용을 중심으로 개발과 배치가 이뤄졌으며, 그 뒤로 최근 약 3~4년간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산악 전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년 사이에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경험 부대가 늘어나면서 미군 내에서 표준 제식인 ACU가 아닌 멀티캠 위장복을 입은 병사들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전투화에서도 이런 ‘아프가니스탄 특수’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에는 사막이나 열대, 온대/한대 등 해당 지역의 기후에 따라 전투화 종류가 나뉘었으나 아프가니스탄 전선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존 전투화로는 무리라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고저 차가 심하고 지면이 거친 산악지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반 전투화는 내구성이 떨어지고 착용자의 발에 적잖은 부담이 가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미 육군의 아프가니스탄용 산악전투화 MCB. 장시간의 등산활동에 적합하고 밑창 바닥 부분은 바위나 경사지 등에서도 쉽게 미끄러지지 않게 특수 디자인된 것이 특징이다. 필자 제공

 



이 때문에 미군은 2011년 초까지 약 2년간 산악용 전투화 선정 작업을 거쳤고, 그 결과 2011년 2월에는 벨빌(Belleville) 사의 모델 950 산악용 전술화가 미군의 산악 전투화(Mountain Combat Boots: MCB)로 선정돼 2만5000족이 현지에 파견된 육군 여단 전투단들에 지급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산악 전투화는 문자 그대로 등산화의 패턴을 상당부분 답습하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등산화를 기초로 만든 전투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 부분이 일반 전투화보다 2~3㎝ 정도 짧고, 전체적인 디자인도 기존의 전술화보다 등산화로서의 형태를 더 따랐다. 발목이나 기타 발 안쪽의 보강 부위나 완충 부위 등도 장시간의 등산활동에 적합하게 돼 있으며, 특히 밑창의 바닥 부분은 바위나 경사지 등에서 쉽게 미끄러지지 않게 특수 디자인된 것이다.

 MCB의 기본 모델인 950형은 내부에 고어텍스 내장재가 들어 있어 방수-투습은 물론 어느 정도 보온성까지 갖추고 있다.

이는 동계, 혹은 야간에 매우 요긴하지만 상당한 고온이 되는 아프가니스탄의 하계 상황에서는 병사들에게 피로감을 더하는 것은 물론 물집 등의 부상 원인이 되곤 한다.

이로 인해 2011년 중에 미 육군은 하계 작전을 위한 신모델, 990형을 채택했다.

 990형은 방수성을 희생해서라도 통기성을 높이기 위해 고어텍스 내장재를 제거하고 환기공을 설치했다. 또 가죽의 양을 줄이고 고강도 나일론인 코듀라 소재 사용량을 늘렸다.

이로 인해 덜 딱딱해 착용감이 편해졌고, 또 무게도 800g 정도 감소되면서 장시간 착용 시 따르던 피로감과 체력 소모가 크게 줄었다.

특히 착용감 부분에서는 기존의 950 모델이 내구성을 의식, 지나치게 단단해 일부 병사들이 전투화를 다시 착용하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개량이 중요했다고 한다.

 990 모델에서는 방수능력이 실질적으로 없지만, 대신 내부에 축적된 습기가 빨리 마르게 돼 있다.

또한 통기성도 기존 950 모델보다 약 2.5배 높아졌으며, 소재의 항균처리가 돼 있어 곰팡이 및 세균의 번식을 최대한 억제한다.

이는 감염의 위험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악취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경북 포항 인근에서 열리고 있는 한미연합 ‘쌍룡’ 상륙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 해병대 장병들이 29일 상륙돌격
장갑차(AAV)에서 내려 해안을 돌파하고 있다.

 

 

국방일보 이헌구 기자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獨 안의 아군 구조’ 영국 배 총출동

가슴 한편엔 ‘비참한 패주’로 남아 …  전몰장병 묘역은 쓸쓸한 적막감만

 

 

 철수작전 중 독일군 공격을 받는 영국 함정. (출처:덩케르크 해양박물관)

 

 

 ▶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결정적인 실수 독일 기갑군단의 쾌속 진격 중지 지시.

 

 1940년 5월 25일 아침, 숨 가쁘게 영·불 연합군을 추격해 온 구데리안의 독일군 전차부대는 덩케르크를 불과 20㎞ 앞두고 있었다. 이제 연합군은 흡사 목에 밧줄이 감기어 누군가가 잡아당기기만 하면 숨이 끊어질 수 있는 위기에 놓인 사형수의 입장이 됐다. 바로 이 순간 “귀관의 부대는 일단 현 위치에 정지하고 추후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히틀러의 지시문이 독일군 기갑군단에 떨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전 기간을 통해 독일군이 저지른 가장 큰 작전상의 실패 중 하나이며 이 뜻밖의 행운 덕분에 수십만 명의 연합군은 목숨을 건지게 된다. 전쟁 후 수많은 역사학자는 히틀러의 이런 지시 배경에 대해 연구했으며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째, 전쟁 발발 후 보름간 너무나도 수월하게 얻어 온 손쉬운 승리가 히틀러로 하여금 새삼스러운 조심성을 불러일으켰다. 둘째, 독일 공군 총사령관 괴링이 공군력만으로도 덩케르크 해변의 연합군을 쓸어 버릴 수 있다는 허풍이 히틀러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셋째, 히틀러는 영국군의 명예로운 철수를 허용함으로 앞으로 영국과의 강화조약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영국군 섬멸을 위한 히틀러의 내부적인 각종 지시를 분석해 볼 때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시행된 덩케르크 철수(일명 Dynamo 작전)를 통해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군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 장병 33만8682명이 목숨을 구했다. 그럼에도 5월 20일 이후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연합군 100만 명 중 얼마나 많은 인원이 목숨을 잃었는지 아직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 않다.

 

일반 공동묘지와 함께 조성된 영·불 연합군 전몰장병 묘역.

 

 

 ▲템즈 강의 거룻배로부터 민간 여객선까지 끝없는 선단이 도버해협을 건너 덩케르크로 향했다.

 13세의 영국 소년 윌리엄은 해양소년단 연습용 돛단배를 갖고 친구들과 함께 덩케르크로 가는 군함을 따라나섰다. 군함의 뒷갑판에서 수병이 마이크로 위험하니 되돌아가라는 권고 방송을 아무리 내보내도 요지부동이었다. “괜찮아요. 우리는 해양소년단원입니다. 우리 돛단배에 군인 아저씨 5명쯤은 태울 수 있다고요!” 군함이 뿜어내는 거친 파도 속에서 위험스러운 항해 끝에 윌리엄과 그 친구들은 그 작은 돛단배에 결국 30여 명의 영국군을 태우고 성공적으로 도버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시작되면서 영국 해군성은 전국 모든 배에 징발명령을 내렸다. 템즈 강의 유람선으로부터 구시대의 유물인 증기선, 개인 소유의 호화 요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배가 프랑스와 마주 보는 도버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배 소유주인 민간인들의 불평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징발대상에서 제외된 침몰 직전의 낡은 어선과 소형 모터보트의 주인들까지 달려와 자기들이 직접 조종해 덩케르크로 가겠다고 해 해군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형형색색의 배들로 구성된 선단이 영국군 구조를 위해 출항하자 해군에 의해 참가를 거절당한 온갖 배들이 애국심에 불타는 시민들에 의해 선단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물론 윌리엄과 그 친구들도 그 일행 중의 한 무리였다.

 아비규환의 덩케르크 해변! 바늘 꽂을 틈도 없이 부두를 빼곡히 메운 병사들은 독일 전투기가 기총소사를 퍼부으며 달려들어도 그저 자리에 납작 엎드려 총탄이 자신을 피해 가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초췌하고 피로에 지친 수많은 영국군이 긴 줄을 이뤄 철수순서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도 대부분의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질서정연했고 패주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명의 병사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대형선박의 구명보트를 모두 바다에 내려놓았다. 보트에 탄 병사들은 철모로 물을 퍼내며 소총 개머리판으로 노를 저었다. 놀랍게도 이런 방법으로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돌아온 군인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작전 기간 중 동원된 총 861척의 선박 중 13척의 구축함을 포함해 272척이 침몰했고 영국 공군은 177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군과 민간의 혼연일체로 진행된 이와 같은 철수작전으로 유럽파견 영국군의 대부분은 고스란히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날 ‘덩케르크 철수’라는 말은 혼란 속의 비참한 패주를 뜻함과 동시에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빠져 나온 행운을 상징하는 말로 기억되게 된다.

 1940년 6월 4일 오전 2시, 드디어 구데리안 기갑군단의 일부가 덩케르크 시내로 밀고 들어간다. 미처 철수선박을 타지 못한 8만여 명의 프랑스군이 우왕좌왕하며 해변에 남아 있었다. 해안 모래사장에는 연합군이 남기고 간 6만3000여 대의 차량, 2만 대의 오토바이, 475대의 전차와 장갑차량, 2400문의 야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독일군 1개 야전군이 활용 가능한 물량이었다.

 

 ▲덩케르크 해변의 전쟁 기념비는 찾기 어렵고 전몰장병 묘역은 적막감만 감돌았다.


 오늘날 덩케르크 해안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손꼽힌다. 백사장 주변 해안도로에는 음식점들과 대형극장이 늘어 서 있다. 1940년 5월의 비극을 상상할 수 있는 전쟁기념탑이나 추모비는 찾아보기 어렵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일랜드인 브랜단 씨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프랑스의 무관심을 성토하고 있는데 옆자리의 어떤 사람이 불쑥 끼어들며 반박한다. 그는 덩케르크 시 공무원이었다. 흥분한 그 사람이 전쟁기념 현충석벽과 연합군 묘지가 있다며 안내를 자청한다. 그와 함께 간 영·불군 묘역은 일반 공동묘지와 같이 조성돼 있었다. 프랑스 국기가 없다면 전몰장병 현충시설로 구분되기도 어려웠다. 또한 전쟁기념 석벽은 해변에서 자동차로 한참 걸렸다. 더구나 어둠까지 찾아와 자세히 식별하기도 곤란했다.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영국군 위주의 작전이었고 상당수의 프랑스군은 독일군의 포로로 남겨졌다. 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서운한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시내의 해양박물관 일부 전시관에서는 비교적 소상하게 제2차 세계대전 시 덩케르크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스텔스 상태서 낙하산보다 활공시간 현저히 감소…

 

휴대용 고공 낙하 스텔스 비행 슈트.  출처:www.spelco.eu

 

 

윙 슈트만 입고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2011년 12월 사람이 착용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는 윙 슈트(Wing Suite)가 등장해 눈길을 모았다. 트랜스 포머(Ⅲ) 영화에서는 로봇만 나는 게 아니라 사람도 하늘을 날았다. 이 영화에서 사람이 윙 슈트를 입고 시속 240㎞의 속도로 공군의 F-22전투기와 나란히 비행하는 장면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낙하 지점에 순식간에 고공 낙하한 후 적에게 들키지 않고 장거리를 활공해 적지에 침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머지 않아 하늘에서 기습 공격을 가하는 특수부대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장비는 은밀한 침투가 생명과도 같은 특수부대의 비밀작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비다.

 독일의 벤처회사인 SPELOC(Special Parachute and Logistics Consortium) 사는 다양한 낙하산 시스템과 헬멧·산소공급장치 등의 기기와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이들은 기존의 낙하산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체 이탈과 동시에 낙하산을 펴 이동하는 고고도 강하작전(HAHO : High Altitude High Opening)용 낙하시스템인 그리핀을(Gryphon) 제시했다. 그리핀은 원래 독수리의 머리·날개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그리핀은 헬멧에 디스플레이가 내장돼 있어 조종이 가능하며 독수리 날개와 같은 1.8m의 윙은 약 5대 1의 글라이드 비율로 활공할 수 있다. 만약 10㎞ 상공에서 강하하면 40㎞ 이상 활공해 순식간에 위험지역을 통과, 원하는 곳에 낙하할 수 있는 스텔스 외형의 탄소섬유 재질 프레임을 가진 최신 낙하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핀을 사용하면 적의 레이더 탐지 및 공격을 받지 않고, 원거리에서 강하작전이 가능하며, 활공 중에는 모든 장비를 본체 안에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스텔스 상태에서 기존 낙하산보다 활공시간을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어 신속·은밀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시스템에는 목적지의 좌표와 위치 파악이 가능토록 자동 비행장치와 항법시스템이 장착돼 있어 목적지에 보다 정확하게 안착할 수 있다. 또 야간 혹은 악천후 조건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므로 기존 낙하시스템보다 낙하임무의 작전 폭을 훨씬 넓힐 수 있다.

 현재는 낙하산을 낙하자가 직접 조종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전자동 조작 방식을 이용해 자동으로 목적지 이동이 가능하고, 소형 터보제트 엔진을 추가해 이동 속도를 더 증가시키는 것까지 계획하고 있다. 계획이 성공 한다면 작전에 필요한 많은 장비를 갖고 순식간에 80㎞ 이상까지 이동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난제는 낙하산 없이 비행 슈트만으로 착지가 가능한가 하는 점이지만, 이 문제 또한 연구자들이 착지 시 윙 슈트 착용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이나 또 다른 장치를 개발하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낙하산 병사는 박쥐인간처럼 정확한 목표지점에 은밀하게 침투해 적의 핵심시설을 기습공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김용수 국방기술품질원 선임연구원>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중동지역 걸프전 계기
‘데저트 부츠<사막용 전투화>’ 개발



미 육군의 신형 전투화 ACB(온대기후용).

ACB의 열대기후용 전투화.



미군이 진한 갈색과 검은색 가죽 전투화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지만 색은 달라도 가죽에 광을 내 써야 한다는 공통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이 중동지역을 주 작전구역 중 하나로 상정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사막의 모래먼지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광을 낸 가죽 전투화 유지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또 습기는 없지만 더위로 인해 흘린 땀이 문제가 되면서 습기 해결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데저트 부츠, 즉 사막용 전투화를 걸프전을 계기로 개발했다. 이것은 정글 부츠를 사막용으로 개량한 것으로, 가죽은 황토색의 거친 표면을 가진 스웨이드 가죽으로 바뀌어 광을 낼 수 없게 됐다.

기본 구조는 정글 부츠와 같지만 배수구 부분이 모래는 막으면서 습기는 배출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 사막 환경에서의 적응을 쉽게 했다. 하지만 데저트 부츠 개발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까지 미군의 전투화는 고전적인 가죽 전투화였다. 이것이 변화를 맞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미 육군과 해병대가 새로운 위장 전투복을 개발하면서부터다.

여기에 맞추면서 표준 전투화 자체를 광택을 낼 수 없는 스웨이드 가죽 제품으로 바꾸게 됐다. 거의 동일한 전투화를 육군은 ACB(육군 전투화), 해병대는 MCCB(해병대 전투화)라는 이름으로 채택했으며, 둘 사이의 차이는 각인 정도다.

 ACB/MCCB는 기존의 전투화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 전투화는 처음부터 일반용(온대지방용)과 열대용의 두 종류로 나뉜다. 일반용도 하부는 가죽, 상부는 나일론으로 만들어져 기존의 정글 부츠와 구조가 유사하다. 게다가 황토색의 스웨이드 가죽으로 만들어져 광택을 낼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술의 발달 때문으로, 광택을 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구두약을 이용해 가죽에 지속적으로 광을 내는 것으로 가죽에 방수 피막을 유지했으나 이제는 가죽 자체의 약품처리를 통해 방수·투습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온대지방용 전투화의 경우 가죽 안쪽에는 방수·투습 능력을 갖춘 고어텍스 내장재가 들어있기 때문에 가죽 자체가 설령 방수성을 잃어도 신발의 방수성은 충분히 유지된다.

 또 다른 장점은 착용 편의성과 내화 성능이다. 나일론 부분도 발목이 조여지는 부분은 가죽을 덧대고 충격흡수 안창을 채택함으로써 착용자의 부담과 불편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고무 밑창은 석유화학 제품에 닿아도 녹지 않도록 제조됐으며, 일정 수준의 내화 성능도 갖고 있다. 전체적인 전투화 자체의 내화 성능도 상당한 수준으로, 미군에서는 이것이 화재 위험성이 있는 전투차량 및 항공기 승무원의 착용이 가능하다고 인정되고 있다.

 기본형은 온대지방용 전투화지만 ACB/MCCB에는 앞서 언급했듯 열대용 전투화도 있다. 이것은 사막·정글 등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기본 디자인은 과거의 정글 부츠와 비슷하며 땀에 의해 습기가 차는 것을 막기 위해 정글 부츠나 기존의 데저트 부츠처럼 모래는 막아도 습기 배출은 가능한 배수구가 설치돼 있으며, 배수구로 인해 의미가 없는 고어텍스 방수층은 제거됐다. 미군은 현재 온대용과 열대용 두가지를 필요에 맞게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초・중・고등학교의 주 5일제 수업이 시작 됐습니다!
토요일에 학교를 안 간다고 하니 좋아하는 학생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군사용어돋보기!
이번시간에는 국방부에서 마련한 토요일 현장체험 프로그램, “나라사랑 체험활동”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국군. 평소,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던 군인의 모습을 이제 토요일이면, 학생여러분들이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군 문화행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나라사랑 체험활동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부적인 지원분야에는 첫 번째로, 현장견학이 있습니다.
안보현장을 체험하는 것과, 부대에 방문할 수 있는 자매학교 초청행사 또, 사진에서 보셨던 것과 같은 군 문화행사 참여 등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국방뉴스에서도 학생들의 병영체험소식을 여러 번 보도해드렸습니다.
병영체험은 몸과 마음을 단련할 수 있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몸으로 체험하면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군인을 보면 나라를 더욱 사랑하게 되겠죠?
앞으로 청소년 호국 수련활동, 1일 병영체험활동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초대할 것입니다.

나라사랑 체험활동의 세 번째 지원항목은 바로 소외지역 학생들을 위한 문화콘텐츠와 학습활동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문화행사나, 체육활동, 교과학습지도와 멘토링 제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지원될 계획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 여러분은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주 5일제 수업으로, 토요일에 뭐할까 고민하지 마시고, 앞으로 나라사랑 체험활동을 통해서 우리 국군 장병들도 더 많이 사랑하고, 나라도 더 많이 사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군사용어 돋보기 였습니다.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


’87 팀스피리트연습 사상 최초로 한미 연합훈련에 함께 참가한 동원예비군들이 육군76사단에 편성돼, 훈련에 앞서 지급된 번호표를 달고 있다.(1987년 3월 22일)


국방일보 DB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기↓ 아래 손가락 모양(view on)을 꾸~욱 눌러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마니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