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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6 세계의 전사적지 답사기 - 100년전 독일의 게트랑제 지하요새
승전 보장 철옹성 ‘찻잔 속 태풍’ 되다


솥뚜껑형 화포진지를 설명하는 1900년대 초기의 독일군 복장 안내인.


메츠(Metz) 시에서 기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조그만한 도시 시온빌(Thionville). 독·불 국경지역에 가까운 이곳은 19세기 이후 보불전쟁,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차례 독일과 프랑스 간 주인이 뒤바뀌었으며 현재는 프랑스 영토에 편입돼 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메츠, 낭시(Nancy)의 프랑스 주민들 중 일부는 자신이 독일인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1871년 보불전쟁을 통해 독일은 프랑스의 메츠, 낭시지역 등이 포함된 알사스 로렌 지방을 점령한다.

그리고 이곳을 영구히 독일 영토로 굳히기 위해 1899년부터 거대한 지하요새를 시온빌 근처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지역은 메츠 시와 룩셈부르크를 연결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이며 프랑스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독일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교통 이용이 불가능한 시내와 다소 떨어진 독일군 요새지역을 찾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유럽지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일요일에는 시골 도시에서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마침 주일예배를 보고 있는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의 예배가 끝날 무렵 동양인 모녀에 의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찬송가 연주가 있었다. 유심히 보니 어머니와 딸의 행동이나 옷차림 등이 한국인처럼 보였다. 예배가 끝난 후 만나 보니 역시 한국인들이었다. 그 어머니는 반가워하면서 이곳에 정착한 지 거의 20년이 됐는데 교회에서 한국인은 처음 만났단다. 1990년대 남편이 대기업 주재원으로 프랑스 메츠에서 근무하다가 IMF로 인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귀국했으나 자신의 가족들은 이곳에 남아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했단다.

 그녀는 한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생활을 한 경험도 있었다. 처음 프랑스 정착 간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업도 안정되고 두 자녀는 프랑스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가족 모두는 프랑스 시민권까지 취득했다. 현재도 한국인으로서의 높은 자부심은 갖고 있으나 단지 자녀들이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때가 부모로서 가장 가슴 아프다고 한다. 자신의 승용차로 게트랑제(Guentrange) 지하요새까지 안내해 주겠다는 친절한 호의로 목적지 부근까지 갔으나 끝내 찾지는 못했다. 결국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려 지하요새의 위치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1905년에 완공된 게트랑제 독일군 지하요새 외부 모습.


다음 세대 전쟁 준비 분위기

 ▶100여 년 전 이미 미래전은 대량 살육전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었다.

 시온빌의 게트랑제 지하요새! 주변 지형 감제가 가능하고 적의 접근을 조기 경보할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은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으로 그 중요성에 변함이 없는 듯하다. 독일군의 지하요새는 1899년 공사가 시작돼 6년 후인 1905년에 완성됐다. 요새의 역사를 설명하는 각종 사진과 도표가 갱도 내부에 전시돼 있다. 인근 도시 군수공장에서 대형 화포를 포함한 각종 군사장비를 대량 생산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또한 산꼭대기에 도로를 만들고 강 옆으로는 성벽을 쌓기도 했다. 아울러 요새지역에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며 엄청난 인력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이 사진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흡사 독일의 전 국력을 쏟아 부어 다음 세대의 전쟁을 준비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100여 년 지난 지금도 사용 가능

 요새지역은 크게 3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바깥에 노출된 콘크리트벽의 두께는 평균 4m이며 평시 2000여 명의 장병이 거주했다. 특히 화약무기의 발전으로 파괴력이 강한 포탄으로부터 전투원들의 생존성을 위해 거미줄 같은 견고한 지하터널을 구축해 뒀다. 요새 주변에는 종심 깊은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편성했고 교통호상 소총병들도 두꺼운 철판을 이용해 개인 참호덮게를 사전 준비함으로 공중폭격이나 파편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했다.

 1900년대 초기의 독일군 복장을 한 안내원에 의해 모여든 십여 명의 관광객과 약 3시간에 걸친 요새 내외부 관람이 있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독일은 일찍이 이런 거대한 지하요새 건설에 엄청난 돈을 퍼부었는가? 아니면 위대한 미래 독일제국 건설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었던가? 완벽한 난방·숙소·목욕탕·주방시설 등을 보면서 전쟁에 대비하는 인간의 집념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화목을 이용해 굽는 대형 기구까지 비치돼 있다. 동굴 속임에도 불구하고 잘 설계된 환기시설로 사용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더구나 지하요새 내에서 잠망경을 이용한 외부 관측과 더불어 9700m의 사거리를 가진 105㎜ 화포사격이 가능하도록 곳곳에 솥뚜껑형 화포진지가 설치돼 있다. 특히 사격과 동시에 추출된 탄피는 원통형 실린더를 통해 2층에서 1층으로 자동으로 떨어지며 가지런히 정돈된다.

2차 대전 끝나며 프랑스에 넘겨 줘

 ▶독일의 지하요새 실전에서는 단 한번도 활용 못하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독일과 프랑스가 번갈아가며 다음 전쟁을 위해 수차례 시설을 보강해 왔던 게트랑제 지하요새는 정작 실전상황에서는 단 한번도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의 게트랑제 지하요새는 프랑스군에 넘어왔고 1927년부터 시작된 마지노 방어선 건설에 본 요새시설의 많은 분야가 참고된 듯했다. 1930년대 프랑스 육군은 이 요새를 독일 국경지역의 전방 마지노 라인에 군수품을 지원하는 핵심거점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독일군이 재탈환했으며 전쟁이 끝나면서 미군이 이 요새를 다시 확보했다가 프랑스군에 넘겨 주었다. 1990년대까지 프랑스군 병참부대가 주둔하다가 철수했으며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주 2~3회 정도 제한된 시간에만 공개하고 있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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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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