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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1 세계의 전사적지 답사기 - 프랑스의 마지노 라인
히틀러 심리전에 ‘佛 구경’ 철통 요새만 믿어
평화 위한 선전공세 펼치자 유토피아적 환상 사로잡혀…


독일 방향 대안상 프랑스군 관측소(뒤편 마스 강 바닥에 철수 터널을 뚫어 둠).


 
▶마지노 요새에서 여자친구 조세핀에게 보낸 나폴레옹 일병의 편지

 “1940년 O월 O일, 조세핀! 5월 휴가계획은 잘 세우고 있는지?

 하얀 백사장, 푸르른 파도와 갈매기 까옥대는 노르망디 해변이 어때.

 이곳 마지노 요새생활은 따분하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어. 독일이 아마 전쟁을 포기한 것 같아. 지난번 진지 앞 순찰 중에 길을 잃고 건너편 독일군에 붙잡혔던 소대원이 돌아오기도 했어. 그 병사를 데리러 갔던 소대장이 왜 빨리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독일군에 항의도 했단다. 독일군 장교는 소대장에게 정중히 사과했고 대신 우리 진지 앞 공터에서 서로 축구시합을 하기로 약속했어. 함부르크 대학 축구동아리 회장이 그곳에 있다는데 조세핀도 알듯이 나도 왕년에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이름을 날리지 않았어. 기대되고 있어.

독일 위장 모른 채 안보 불감증 빠져

 지하갱도 생활은 다소 답답하지만 마지노 국방장관 배려로 복지시설도 나름대로 잘 갖춰져 있어. 주 3회 온수 샤워, 수시로 영화 상영 그리고 군의관 감독 아래 소대단위 지하 태양등 일광욕도 하고 있어. 더구나 지하 철도까지 있어 대대본부 사역 갈 때는 협궤철도를 이용하고 있어.

 아무튼, 빨리 비상이 해제돼 조세핀과 5월 여행을 같이 가야 할 텐데···”

 그 후 이 편지는 독일군의 화염방사기에 그을려 전사한 나폴레옹 일병의 주머니에서 반쯤 탄 채로 발견됐다.

 물론 이 이야기는 1940년 당시 마지노 요새에서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던 프랑스 장병들의 분위기를 여러 자료를 근거로 필자가 작성한 가상편지다.



 ▶전쟁 직전 노련한 독일의 위장 평화공세와 다가온 위기에 눈감은 프랑스의 안보 불감증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의 18~27세 남성인구 27%가 전장에서 숨졌으며 사망자는 약 150만 명에 달했다. 프랑스인들은 뼛속 깊숙이 전쟁 혐오증이 새겨졌고 평화를 갈망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 프랑스인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히틀러는 노련하게 평화를 위한 선전공세를 펼치며 독일군을 맹훈련시켰다.

전쟁 치르기도 전에 내부 혼란

 1937년 8월, 베를린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쟁부상자 만남의 행사를 개최해 약 10만여 명의 연합군 사절단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히틀러는 시종 눈물을 글썽이며 제1차 세계대전 시 가스공격으로 자신도 실명직전에서 회복됐다며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로 관중에게 반전사상을 호소했다.

독일의 노련한 위장평화 공세에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유토피아적 평화주의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9년 동안 엄청난 예산을 들여 750㎞에 달하는 독일 국경지역에 건설한 마지노(Magino) 요새 안의 정예 프랑스 육군만 굳게 믿는다.

 더구나 프랑스의 공산 좌익세력들은 독일의 나치스트들과 내통하기도 했다. 프랑스 시가지로 진격했던 독일군들은 “독일군들을 쏘지 마라. 단 한 발도 안 된다! 스탈린 만세, 히틀러 만세!”라는 삐라가 수없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결국 프랑스는 전쟁을 하기도 전에 히틀러의 심리전과 좌익들의 각종 테러와 유언비어로 내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독일·프랑스의 전략적 요충지 스당 1800년대부터 주인이 수시로 바뀌었던 비극의 현장

 1871년 1월 파리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프랑스는 스당전투에서 패해 독일에 무릎을 꿇으며 독·불 전쟁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그 이후 제1차, 2차 세계대전 간에도 스당과 마스 강은 치열한 격전지로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비극을 경험해야만 했다. 시내 중심부에 웅장한 스당 성벽 곳곳에 뚫려 있는 화포진지는 스당이 수세기 전부터 독·불 국경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임을 대변해 주고 있다.

독일군 기습공격에 순식간에 와해

 수차례 독일과의 전쟁 경험이 있었던 프랑스도 이곳 스당 주변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견고한 요새지대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마스 강 건너편 독일군 접근로에는 둥그런 굴뚝 모양의 관측초소가 군데군데 서 있다. 독일군 공격 시 신속하게 차안상의 프랑스군에 알려주고 관측병들은 강바닥 밑으로 미리 뚫어 둔 터널을 통해 안전하게 본 진지로 철수했다. 이처럼 완벽한 방어준비에도 제2차 세계대전 시 치밀하고 과감한 독일군의 기습공격에 프랑스군은 순식간에 와해해 버렸다. 전선 장병들은 독일 슈투카(급강하 폭격기 U-87)의 맹렬한 폭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터운 철갑 속에서 안전하게 웅크린 곰이 됐다. 프랑스군 수뇌부의 대응 또한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참호전 사고방식에 굳어 있어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스당 시내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마스 강과 교량 입구 부근에는 어김없이 견고한 진지들이 구축돼 있다. 때로는 벙커 지붕이 찢겨 철근이 앙상하게 들러나 있기도 하고 측면에 구멍이 뻥 뚫린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진지들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벙커 입구는 대부분 막혀 있다. 기관총의 측면사격 가능과 병사 방호를 위한 총안구, ‘ㄱ’ 형태의 출입통로 등은 현대 벙커 설계개념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스당역 앞의 호텔 주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며 전쟁 때문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기차역 사진을 보여주었다. 과거 시내 전역에 많은 벙커가 있었지만 도시개발 때문에 상당수가 철거됐다고 했다. 동행한 P군은 호텔 펍(Pop)에서 만난 아저씨의 집을 방문해 전쟁 당시의 스당지역 희귀사진을 잔뜩 복사해 왔다. 그 아저씨는 스당 시내 경찰관으로 자기 아버지의 각종 전쟁기록과 사진 자료를 많이 갖고 있었다고 한다. 


[Tip]가짜 전쟁(Phoney war)? -‘마지노’에 대한 환상 히틀러에 항복 수모 불러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9월 3일 프랑스와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한다.

그럼에도 내심 독일과 전쟁을 회피하고 싶은 프랑스와 영국은 서부전선에서 별다른 전투를 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이 또다시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침공함으로써 끝이 난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래도 “우리는 마지노(Magino)가 있으니까···”하는 믿음으로 애써 전쟁 승리에 대한 환상에 빠진다.

그러나 독일군 전격전 앞에 프랑스는 결국 대패하게 돼 1940년 6월 22일 제1차 세계대전 시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았던 꽁피에뉴 숲 속 기차 안에서 거꾸로 히틀러에게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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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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