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1.04.07 YA-9 근접항공지원 공격기 (1)
  2. 2011.04.07 A-12 어벤저 II 공격기
  3. 2011.04.07 라비(Lavi) 전투기
  4. 2011.04.07 RAH-66 코만치
  5. 2011.04.07 Su-47 베르크트 전투기
  6. 2011.04.07 XF-108 레이피어
  7. 2011.04.07 캐나다 CF-105 애로 전투기
  8. 2011.04.07 YF-12 블랙버드
  9. 2011.04.07 AH-56 샤이엔
  10. 2011.04.07 Yak-38과 Yak-141

A-10기와 경쟁에서 패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근접항공지원(CAS)에 특화된 공격기라면 미 공군의 A-10, 러시아의 Su-25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A-10 공격기는 1991년 걸프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임으로써 명성을 굳혔다. 이번에 소개할 YA-9 공격기는 이 A-10 공격기와 경쟁에서 패해 역사 속에 묻힌 기종이다.

 YA-9와 A-10 공격기는 미 공군이 67년부터 시작한 A-X(Attack Experimental) 사업을 통해 개발됐다. 60년대 나토군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대량의 전차부대를 보유한 바르샤바조약기구 지상군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였다. 당시 서유럽의 나토군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대항할 충분한 양의 전차를 확보하지 못했다. 다양한 종류의 대전차 전력을 고심하던 나토군은 대전차 공격기와 공격 헬기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미 공군은 전차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저가의 대전차 공격기를 개발해 대량의 전차를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구상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A-X 사업이었다.

 A-X 사업으로 탄생하게 될 공격기는 비포장의 야전 비행장에서도 운용이 가능해야 했다. 그리고 전방의 화력지원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전장 상공에서의 장시간 체공능력이 요구됐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F-4 팬텀 전투기에서 A-1 스카이레이더 공격기까지 다양한 기종을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투입했다. 그 결과 프로펠러 공격기였던 A-1이 오히려 제트 전투기들보다 근접항공지원 임무에 더 효과적임이 판명됐다. 비록 무장탑재량도 적고, 속도도 느렸지만 저공에서 장시간 체공할 수 있었던 A-1 공격기를 지상군이 더 선호했던 것이다.

 총 6개 항공기 제작사가 A-X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시제기 제작업체로 선정된 것은 노스롭 사와 페어차일드 사였다. 시제 항공기 명칭은 각각 YA-9와 YA-10으로 명명됐고, 72년부터 본격적인 시험평가가 이뤄졌다.

 베트남전 경험을 통해 저고도에서 작전하는 항공기는 다양한 구경의 대공화기에 노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새로 개발되는 공격기는 대공화기에 대한 생존성이 특히 강조됐다. 이러한 대책으로 양 기종은 조종석에 23㎜ 탄의 직격에도 견딜 수 있는 욕조형 방탄판을 탑재해 조종사의 생존확률을 높였다.

 A-10과 YA-9를 비교하면 형상 측면에서 엔진 위치와 꼬리날개가 가장 차이가 난다. A-10은 엔진을 후부 동체 위에 각각 떨어뜨려서 얹은 형태로 설계했다. 특이하게도 동체 위에 엔진을 위치한 이유는 앞과 뒤의 날개가 엔진을 가려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엔진 뒤에 위치한 수직 꼬리날개는 엔진으로부터 방사되는 적외선을 감추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유사시 한쪽 날개가 피탄되더라도 조종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꼬리날개는 두 개로 설계했다.

 독특한 외형의 A-10과 달리 YA-9는 일반적인 제트기 형상으로 설계됐다. 엔진은 주날개 안쪽에 위치했고, 수직 꼬리날개도 한 개였다. YA-9는 한국 공군도 장기간 운용했던 세스나 사의 A-37B 공격기를 마치 그대로 확대시켜 개발한 듯한 외형을 보였다. YA-9는 A-10보다 최대속도를 높여 생존성 향상을 도모했지만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못했다.

 양 기종의 시험평가 결과, 미 공군은 73년 1월 YA-10을 차기 공격기로 선정했다. 생존성과 양산 비용 측면에서 YA-10이 YA-9보다 우수했던 것이다. YA-9 공격기는 평범한 외형 때문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YA-9와 유사하게 설계된 러시아 Su-25 공격기는 다양한 국가에 수출돼 대표적인 주요 공격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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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980년대말
    개발 추진된 스텔스機


A-12 어벤저II는 미국이 1980년대 말에 개발을 추진하다 포기한 스텔스기 이름이다. 마치 UFO를 연상시키는 외형의 이 스텔스기는 당시 미 해군의 주력 공격기였던 A-6 인트루더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이 시작됐다.

 A-6은 초기형인 A-6A형이 1963년에 실전배치된 이래 1997년까지 미 해군의 대표적인 함재 공격기였다. 약 8톤의 외부무장을 탑재하고도 1600㎞의 전투행동반경을 보였던 A-6의 공격력은 A-7 콜세어II 공격기나 F/A-18 호넷 전투기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A-6의 대를 이어 미 해군은 A-6 수준의 공격능력을 갖추면서도 미래 전장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생존성이 강화된 ATA(Advanced Tactical Aircraft) 사업을 계획했다.

 ATA 사업에는 업체들이 2개의 팀을 구성해 미 해군에 설계안을 제시했다.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맥도널 더글러스로 구성된 GD팀은 삼각형 모양의 기체를 제안했고, 노스롭과 그루먼·LTV로 구성된 노스롭팀은 B-2 스텔스 폭격기를 축소한 듯한 형상의 기체를 제안했다. 결과는 GD팀의 승리였다. GD팀이 더 낮은 비용에 높은 성능을 제시했던 것이다.

 ATA 사업으로 탄생할 항공기는 F-117보다 뛰어난 스텔스 성능과 무장능력이 요구됐다. 미 해군은 A-6보다 2배의 신뢰도를 기대한다는 의미에서 명칭도 6의 2배를 곱해 A-12로 명명했다.

 A-12는 삼각형 모양의 다면체 설계와 대형의 내부 무기고를 탑재해 레이더 반사 단면적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엔진은 쌍발로 결정됐고, A-6보다 긴 작전반경이 요구돼 삼각형의 전익기(Flying Wing) 형태로 설계가 진행됐다.

 A-12는 최대이륙중량 31톤에 내부연료만 10톤 이상 탑재한다. 충분한 내부연료량 덕분에 GD팀은 노스롭팀 설계안이 전투행동반경 1570㎞를 보였을 때 전투행동반경 약 2030㎞라는 높은 성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노스롭팀보다 긴 항속능력의 스텔스 공격기를 대당 3100만 달러에 공급하겠다는 GD팀의 설계안은 미 해군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스텔스기 개발 경험이 없었던 GD팀은 신기술을 대거 적용하면서도 개발비를 39억 달러로 예측했다. 그러나 사업계약이 시작된 1988년 11월 이후 완료 추정비용(EAC)은 3개월마다 3~4억 달러씩 증가했다. 급기야 2년도 안 된 1990년 5월에는 완료 추정비용(EAC)이 54억 달러까지 상승했다. 계약 최고한도가인 47억 달러는 이미 개발 1년 만에 넘은 상태였다.

 미 해군은 A-12가 탄생하면 3년 내에 미 해군 전투기 예산의 70%를 A-12가 소모시킬 것이라고 걱정했다. 걸프전이 발발하기 열흘 전인 1991년 1월 7일, 마침내 딕 체니 국방부장관은 A-12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발표하고야 만다.

 초기 소요가 미 해군 620대, 미 해병대 238대로 함재기 소요만 858대, 미 공군도 400대를 구매하게 돼 총 양산대수는 1258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실물모형도 완성되기 전에 취소된 것이다.

 A-12의 개발 취소는 잘못된 사업관리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구소련 붕괴와 전반적인 국방비 감축 무드라는 환경적인 이유도 결정적인 취소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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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첫 독자개발
       경량 다목적 전투기



이스라엘의 라비(Lavi) 국산전투기 개발 배경에는 크필(Kfir) 전투기가 있다. 크필 전투기는 프랑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금지하자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프랑스 미라지V 전투기를 개조해 개발한 다목적 전투기다.

 외국 전투기의 개조 개발로 전투기 개발의 첫걸음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한 발 더 나아가 전투기의 독자 개발을 추진했다. 독자 개발 전투기 개발 계획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79년이었으며, 공식적인 사업추진은 80년 2월부터 시작됐다.

 라비(Lavi)로 명명된 이 독자개발 전투기는 이스라엘 공군의 대지공격 임무를 담당하던 A-4 스카이호크 공격기와 크필 전투기, F-4 팬텀 II 전투기를 대체할 계획이었다. 따라서 개발 요구도 또한 근접항공지원(CAS)과 전장항공차단(BAI) 임무수행에 중점을 두고 설정됐다. 또한 라비 전투기의 공대공 전투 능력은 기본 임무로서가 아닌 부차적인 임무로 고려됐다.

 라비는 수십 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전투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경량 다목적 전투기였다. 전체적인 형상은 꼬리날개가 없는 무미익 카나드 델타형으로 설계됐고, 측면 형상은 F-16 전투기와 유사한 것이 특징이었다.

 라비의 공허중량은 6.7톤, 최대이륙중량은 16톤급으로 중량면에서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보다 가벼운 편이었고, 전반적인 크기는 F-16 초기형에 해당했다. 다만 일반적인 주익-미익이 아닌 델타익을 적용했기 때문에 주날개 면적이 넓어 날개 면적당 하중은 F-16보다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엔진으로는 개발 초기에 F404 엔진을 한 개 탑재하는 것이 고려됐으나 추후 확장성을 고려해 추력 9톤급의 PW1120 엔진으로 변경됐다. 비행제어 계통은 4중 전자식 비행제어(FBW) 방식으로 기계적인 백업은 없다. 복합재는 카나드와 수직 꼬리날개 등에 적용돼 전체 구조중량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라비의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돼 첫 시제기(B-01)의 초도비행이 86년 12월 31일에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어서 두 번째 시제기(B-02) 초도비행도 1987년 3월에 실시됐다. 이스라엘의 첫 독자개발 전투기 라비는 순조롭게 전력화가 진행될 것만 같았다.

 87년 8월, 첫 번째 시제기(B-01)가 초도 비행에 성공한 지 채 8개월도 지나지 않아 라비 전투기 개발계획은 돌연 취소되고 말았다. 라비 전투기 개발에는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라비 전투기 개발 사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양산 계획 대수가 복좌형 60대를 포함해 총 300대 규모에 달할 정도로 이스라엘로서는 상당히 큰 사업이었으나 이스라엘은 라비 개발비를 전액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긴밀한 대미관계를 이용해 개발비의 약 40%를 미국 정부가 부담한다는 계획을 전제로 라비 개발은 추진됐다.

 미국 정부가 40%의 개발비를 부담하게 됨에 따라 미국은 라비 개발 사업에 대한 통제가 가능했다. 미국은 라비 전투기가 미국산 전투기인 F-16, F/A-18과 수출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것을 우려해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라비 개발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던 미 정부는 미국 국회가 라비 개발비 지원을 중단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비용과 예산상의 이유로 지원을 취소했고 자금 여력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결국 독자개발 전투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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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스텔스 성능
  96년 1월 초도비행 마쳐



 1980년대 미 육군은 차세대 공격헬기를 다목적 헬기로 개발해 무장·정찰·기동 헬기까지 하나의 기종으로 대체하고자 LHX(Light Helicopter Experimental)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신형 헬기 개발을 통한 구체적인 대체 계획은 AH-1 공격헬기와 UH-1C 건십을 AH-64 아파치로 대체하고, 최종적으로는 LHX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OH-58A/C 카이오와, OH-6 카이유즈 정찰헬기도 OH-58D 카이오와 워리어 AHIP로 대체한 후 최종적으로 LHX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놀라운 사실은 다용도 수송헬기로 사용되는 UH-1과 UH-60까지도 LHX 다용도형으로 통일한다는 것이었다. 대형 수송헬기를 제외한 모든 미 육군항공대 헬기를 LHX 계열 하나로 대체하겠다는 이 야심찬 계획은 결국 냉전시대의 꿈을 안고 84년 확정돼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LHX 개발에는 보잉·시콜스키팀과 벨·맥도널 더글라스팀이 경합을 벌였고, 91년 4월 5일 보잉·시콜스키팀이 경쟁에서 승리해 개발이 본격화됐다. RAH-66 코만치로 명명된 이 신형 헬기는 시제기가 95년에 출고됐고, 96년 1월 4일에 초도비행이 성공적으로 실시됐다.

RAH-66의 가장 큰 특징은 스텔스 성능이다. 적의 종심 깊숙이 침투하는 전투 정찰임무에서 높은 생존성을 얻기 위해 코만치는 높은 스텔스 성능이 요구됐다. 이를 위해 코만치에는 F-117 스텔스기와 같은 다면체 방식의 설계가 적용됐고, 전파 반사와 소음이 큰 테일로터를 없애기 위해 패네스트론 방식이 적용됐다. 또 인입식 착륙장치와 대규모로 복합소재를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스텔스 설계가 이뤄졌다.

그 결과 코만치는 AH-64 아파치보다 레이더 반사를 66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었고, 적외선은 2.75분의 1, 소음은 1.6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생존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스텔스 성과와 더불어 코만치를 미 육군항공의 혁신적인 무기체계로 만든 것은 네트워크중심전 개념을 적용시킨 항전체계 덕분이었다. 코만치는 미 육군의 플랫폼 중 공중과 지상무기체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완전 디지털화된 시스템을 갖춘다는 목표로 개발됐다.

이를 위해 고성능 컴퓨터를 내장하고 보안 디지털통신체제를 갖춰 육군의 항공 및 지상부대가 원하는 공통작전정보 및 영상을 정확히 전송하도록 개발됐다. 신속한 전장 정보 공유능력으로 다른 플랫폼들보다 더 많은 목표물을 인식하고 교전할 수 있는 능력과 스텔스 성능까지 갖춘 코만치는 지상의 전장을 압도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냉전 말기에 구소련의 신형 공격헬기와의 교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공대공 전투 성능은 물론 대규모 기갑전을 수행할 만큼 충분한 공격능력과 생존성을 갖춘 헬기를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투형은 물론 병력수송이 가능한 다용도형까지 감안해 초기에 설계가 이뤄졌기 때문에 코만치 프로그램의 기술적인 위험도는 대단히 큰 것이었다.

 96년 배치를 목표로 84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코만치는 결국 전력화가 2011년으로 연기됐다. 생산대수도 85년 당시 5023대에서 2002년에는 650대 수준으로 급감했다.개발일정의 반복적인 지연으로 프로그램 코스트는 급증하게 됐고, 긴 개발기간 동안 변화된 전장 환경과 운용개념은 다시 기술적 요구수준과 코스트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무리한 기술적 요구수준과 프로그램 관리, 일정의 문제로 의회의 집중공격을 받아온 코만치는 양산대수 축소에 따른 단가의 급등으로 무기체계로서의 효율성을 의심받아 결국 2004년 2월 27일 개발이 전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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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야심차게 개발한 
       차세대 실험 전투기


Su-47 베르크트(Berkut) 전투기는 F-22 랩터로 대표되는 5세대 미국 전투기들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러시아가 야심차게 개발한 실험 전투기다.

 1997년 9월에 처녀비행을 마친 Su-47은 개발 초기에 실험기 명칭인 S-37로 불려왔지만, 2002년에 명칭이 변경돼 Su-47로 최종 결정됐다. 실험 전투기인 Su-47은 미국의 ‘X’ 시리즈와 같은 단지 연구용이 아니고 기내에 고정무장과 무장탑재 능력을 갖춘 실전적인 모델이다.

 미국의 F-22가 ATF 계획으로 1980년대부터 추진됐듯이 러시아의 차기 전투기 계획은 1980년대부터 I-90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I-90 프로그램은 2000년부터 보다 진보적인 개념의 PAK FA 프로그램으로 변경됐고, PAK FA의 주계약자가 2002년 3월에 수호이로 결정됨에 따라 향후 등장할 기종도 Su-47을 토대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단 Su-47의 특징인 전진익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Su-47의 기동성은 매우 뛰어난 편인데, 이것은 Su-27의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에 사용된 항공 역학적 기술이 Su-47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Su-47의 캐노피와 랜딩기어, 수직미익 등 일부 구성품은 Su-27의 것을 채용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Su-37보다 발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아음속에서의 기동성은 매우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전진익 특유의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재래식 형태의 전투기들과 달리 카나드·주익·수평미익 등 3개의 날개가 모두 양력을 발생시키는 공력 설계와 전자식 비행제어의 결합으로 Su-47은 높은 받음각 성능과 선회율 특성을 보이고 있다.

 Su-47의 외관상 가장 큰 특징은 전진익이다. 전진익은 같은 면적의 후퇴익에 비해 높은 양항비·선회율, 고받음각에서의 안정성, 단거리 이착륙 성능 등이 유리하다. 그리고 낮은 실속속도와 우수한 스핀 특성, 후퇴익에서 주로 발생하는 익단실속이 없기 때문에 기동성면에서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어와 소재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날개 형상이므로 아직은 연구개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동체는 주로 티타늄과 알루미늄 합금으로 구성되며, 복합재는 13% 정도로 대량 사용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기종들과 달리 주익의 복합재 비율은 90%에 달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전진익의 공력적 특성 때문이며, 복합재의 섬유 방향을 교차시켜 강도를 유지하고 있다.

 5세대 전투기답게 Su-47은 본격적인 스텔스 개념이 적용됐다. 무장의 내부 탑재와 더불어 전진익 고유의 스텔스성이 Su-47의 스텔스 성능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공기 흡입구의 팬블레이드가 정면에 노출되지 않게 하고 레이더 흡수물질(RAM)을 외피에 도포하는 등 다양한 스텔스 기술이 적용됐다.

 Su-47 전투기는 러시아가 1980년대부터 시도한 I-90 차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I-90 프로그램은 PAK FA 프로그램으로 변화돼 결국 Su-47은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개발 주체는 동일하므로 Su-47에 적용된 기술은 러시아의 차세대 전투기에도 연계해 적용될 것이다. Su-47은 MiG 1.44와 더불어 러시아의 5세대 전투기가 어떠한 성능을 갖추고 탄생하게 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전투기라고 의미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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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공군의 마하 3급
        고속 장거리 요격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 간의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 경쟁에 돌입한다. 핵무기 투발수단으로 가장 먼저 이용된 것은 전략폭격기였으며, 이후 대륙간탄도탄(ICBM)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이 등장해 미국과 소련은 상호 확증파괴(MAD)가 가능한 핵전력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양국은 핵무기가 자국 영토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지만 당시 기술로 탄도탄의 요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탄도탄보다는 전략폭격기에 대한 요격체계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특히 적 폭격기가 요격되더라도 자국 영토에는 피해가 없도록 원거리에서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장거리 요격기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배경 아래 1958년 미 공군은 작전운용서 GOR-114에 LRI-X 프로그램을 명시하고 신형 장거리 요격기 개발을 추진했다.LRI-X 프로그램 초기에는 미사일과 유사한 형상의 리퍼블릭 XF-103이 미 공군에 제안되기도 했지만 개발상의 문제로 채택되지 못했다. 기존의 F-89·F-101 전투기를 대형화하는 안이 뒤이어 등장했지만 마하 3급의 전투기는 기존 기체의 개조로 달성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LRI-X 프로그램의 설계안으로 채택된 기종은 노스 아메리칸의 설계안을 토대로 한 XF-108 전투기였다. XF-108 체계의 특징은 마하 3의 속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J93 엔진과 GAR-X 핵탄두 공대공 미사일, AN/ASG-18 레이더 화력통제장치로 요약된다.AN/ASG-18 펄스도플러 레이더는 YF-12 블랙버드 전투기에도 채택됐던 대형 레이더로 탐지거리가 500마일이 넘는다.

AN/ASG-18의 강력한 성능 덕분에 XF-108은 요격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지상의 방공레이더를 제한적으로 보완하는 역할도 고려됐다.XF-108의 주요 무장은 GAR-X 공대공 미사일이다. 훗날 GAR-9(AIM-47A)로 명명된 이 장거리 미사일은 마하 6의 속도에 210㎞ 이상의 사정거리를 갖는 대형 미사일이었다. 공대공 미사일로는 특이하게도 액체연료를 사용했던 GAR-X는 당시 방공개념을 반영해 일반 탄두뿐만 아니라 250㏏급의 핵탄두도 탑재가 가능했다.

최대추력 13톤의 J93 엔진을 쌍발로 탑재한 XF-108은 고도 24㎞에서 시속 3187㎞,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요격임무를 수행하고, 줌업 상승으로 최대 30㎞까지 상승한다는 성능이 요구됐다. 아울러 외부연료탱크 탑재 없이 1852㎞ 이상의 작전반경이 요구돼 기체는 대형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었다.

1959년에 제작된 XF-108 실물크기 모형에 의해 예상된 중량은 공허중량이 22톤, 최대이륙중량이 46톤에 이르렀다.무장은 속도와 상승 성능을 고려해 동체 내부에 탑재되며, GAR-X 대형 공대공 미사일 3발을 표준으로 탑재하도록 설계됐다. 마하 3급의 고속 장거리 요격기로 야침차게 개발이 추진되던 XF-108은 1959년 9월에 결국 예산문제로 취소되고야 말았다.

XF-108의 개발 취소에는 당시의 심각했던 국방예산 상황이 외부요인으로 작용했으나 경제성이 고려되지 못한 XF-108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비록 XF-108 기종은 취소됐지만 XF-108 탑재를 위해 개발되던 AN/ASG-18 레이더와 GAR-X 미사일은 예산의 압박에도 살아남아 훗날 A-5·F-111·F-14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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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세계 최고 전투기 개발 시도


민간 항공기 제작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캐나다가 미국과 러시아 전투기보다 더 뛰어난 고성능 전투기 개발을 1950년대에 시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1950년대 캐나다 영공 방위의 주력 전투기는 CF-100 카누크 전투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랭카스터 폭격기 생산으로 유명했던 아브로 캐나다가 제작한 이 전투기는 성능적으로 미국의 F-94C 스타파이어와 비견됐다.

캐나다는 CF-100 양산 배치와 더불어 1953년부터 세계 최고 성능의 후계기 개발을 물색했다. CF-105 애로(Arrow)로 명명된 신형 전투기의 요구 성능은 최대속도 마하 2, 최대상승고도 18.3km, 전투행동반경 370km였다. 이 정도의 성능이라면 당시로서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놀라운 것은 항공전자와 무장체계였다.

흔히 최초의 하방 탐색·공격 능력을 갖춘 레이더는 F-14A의 AWG-9로 알려져 있다. AWG-9도 처음에 개발될 때는 완전히 디지털화하지 못한 펄스도플러 레이더였다. 아스트라(ASTRA)로 명명된 CF-105의 화력통제 레이더는 1950년대에 이미 완전 디지털화에 펄스도플러 하방 탐색·공격 성능을 목표로 했다. 게다가 아스트라 레이더는 세계 최초로 적외선 탐색 추적장치(IRST)와 연동까지 고려해 시대를 앞서갔다.

이 레이더는 훗날 YF-12A의 ASG-18 레이더 개발로 이어져 탐색거리 500마일을 자랑하게 된다.레이더뿐만이 아니었다. 완전 자동화된 착륙 모드까지 지원하는 자동조종 체계와 최초의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 by wire)를 추구한 제어 계통 개념까지 합하면 1950년대 기술로 CF-105를 완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로에 탑재될 무장은 스패로II 미사일이었다. 스패로II는 서방 측에 널리 알려진 반능동 레이더 유도 방식의 스패로III와 달리 능동 레이더 유도 방식을 사용했다. 대형의 피닉스 미사일로 1970년대 중반에야 겨우 실용화된 능동 유도 방식을 1950년대 기술 수준으로 작은 스패로 미사일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엔진도 당시 기술로서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CF-105에 사용될 이로쿼이즈 엔진은 최대 추력 11.8톤급으로 당시 대형 전투기에 사용되던 J75의 추력 8.4톤보다 훨씬 컸다. 이는 F-15를 위해 1970년대에 탄생한 F100-PW-100의 10.8톤 추력보다도 큰 것이었다.

앞서 서술한 항공전자와 무장, 엔진은 기본형인 애로 Mk.1 사양이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파생형으로 계획된 애로 Mk.3에서 최대속도 ‘마하 3.5’, 전투속도 마하 3이라는 극단적인 성능도 추구했다는 것이다. XF-108을 대신해 미국이 구매할 수 있도록 계획된 애로 Mk.4는 추력 7톤의 램제트 보조엔진을 4개까지 탑재할 계획이어서 마하 3급의 XB-70 폭격기 호위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CF-105가 추구한 성능은 2000년대의 지금 시점에서 봐도 개발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1950년대 불가능에 가까웠던 무장과 항전체계, 엔진의 조합은 개발 기간 연장과 개발비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왔다.

레이더 개발비의 급증은 이로쿼이즈 엔진 개발 취소로 이어졌다. 급기야 1959년 2월 20일, 캐나다 수상은 CF-105 개발의 전면 취소를 선언했다. 개발비 급증과 함께 경쟁 기종이 탄생되기를 원치 않았던 미국의 입장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세계 최고의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캐나다의 원대한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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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 전투기 '   
                전설로만 남아


탄생한 지 40년이 지난 YF-12 블랙버드는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유지될 정도로 경이적인 성능을 가졌던 전투기다. 세계 최대속도 전투기, 세계 최고고도 전투기, 세계 최대중량 전투기, 세계 최대 탐지거리 레이더 탑재 전투기, 세계 최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탑재 전투기 등 YF-12의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전설로 남아 있다.

YF-12의 탄생은 미국 CIA의 A-12(SR-71) 비밀 스파이 항공기에서부터 시작된다. U-2 고고도 정찰기의 후속 기종으로 개발된 A-12 정찰기의 요구성능은 순항속도 마하 3.29에 운용고도 9만 피트(ft)라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1950년대 말 마하 3급의 항공기로는 A-12 외에도 XB-70, XF-108 등이 함께 개발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F-106을 대체할 XF-108 전투기가 예산 문제로 취소돼 버리자 미 공군은 F-106을 대체할 후계기 대책에 고심하게 된다. 마하 3급 전투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미 공군에 록히드는 A-12 정찰기의 전투기형을 제안한다. A-12는 이미 CIA의 비밀 자금이 투자됐기 때문에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 공군은 저렴하게 마하 3급의 전투기를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제안은 A-12 사업에서 미 공군을 전면에 내세우고 주체를 감추고 싶어 했던 CIA의 입장과도 맞아떨어져 A-12의 전투기형, 즉 YF-12 블랙버드의 개발이 1960년 8월에 승인된다.이미 마하 3급의 A-12를 개조해 탄생하게 되는 YF-12 검은 새(Black Bird)에는 세계 최고의 눈과 발톱이 추가됐다. YF-12의 눈으로는 탐지거리가 500마일을 넘는 AN/ASG-18 펄스도플러 레이더가 채택됐다.

AN/ASG-18은 레이돔 직경만 1m가 넘어 전투기용 레이더로는 현재까지도 최대 크기에 해당한다. 원래 XF-108용으로 개발되던 이 시스템에는 적외선 추적 센서까지 연계돼 전자전 상황에서도 적기 탐지가 가능토록 했다.AN/ASG-18과 결합되는 무장은 AIM-47A(GAR-9) 팰콘 장거리 미사일이다. 1958년에 AN/ASG-18과 병행해 개발이 시작된 이 미사일은 마하 6의 속도에 210km 이상 사정거리를 갖는 대형 미사일이었다.

공대공 미사일로는 특이하게도 액체연료를 추진방식으로 사용했던 AIM-47은 중간유도에 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을, 종말유도에는 적외선 유도방식을 사용했다. 탄두는 당시 방공 개념을 반영해 250kt의 핵탄두 탑재도 가능했다.1963년 8월 7일에 첫 비행을 성공한 YF-12A는 1964년 표적기에 대한 장거리 요격실험까지 성공리에 마쳤다. 성능에 만족한 미 공군은 1965년에 93대의 양산형 F-12B를 록히드에 주문했다.

하지만 공군의 구매 의지에도 불구하고 맥나마라 당시 국방부장관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1966년에 YF-12 프로그램을 전면 취소시키고, 대신 염가형의 F-106X 개발을 지시한다. 결국 F-106X도 개발이 취소돼 미 공군의 F-106 후계기 선정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방공형 F-16 ADF 기종으로 결정됐다.

대량생산됐다면 러시아의 MiG-25를 능가하는 가공할 요격기가 됐을 YF-12는 결국 드라이든 비행연구센터로 이관돼 1979년까지 실험기체로 사용된 후 퇴역했다. YF-12 사례는 성능도 만족스러웠고, 소요군도 사용을 원했지만 무기체계 효율성만을 강조하던 맥나마라 장관의 의지 때문에 취소된 경우다. 맥나마라 장관의 무리한 의지는 미 공군과 해군 전투기를 F-111 기종으로 통합한다는 TFX 계획도 실패로 끝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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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능력 5.4톤
 수평최대속도 시속 407km


현존하는 공격 헬리콥터 중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지닌 중무장 공격 헬리콥터를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미 육군의 AH-64 아파치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1984년부터 미 육군에 배치되기 시작한 아파치는 중무장, 중장갑 헬기의 대명사이면서도 뛰어난 기동성을 선보이는 고성능 헬리콥터다. 하지만 아파치가 배치되기 17년 전, 이미 그보다도 뛰어난 고성능의 공격헬기가 비행을 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혁신적이면서도 독특한 설계로 뛰어난 성능을 입증했지만 결국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이 공격헬기의 이름은 AH-56 샤이엔이다. 샤이엔의 탄생 배경은 베트남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베트남전에서 UH-1과 CH-47은 미 육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송전력이었지만 적의 공격에 취약해 손실률이 높았다. 그 때문에 이 수송헬기를 호위할 공격헬기가 필요하게 됐으며, 이러한 요구조건에 따라 AAFSS(차기공중화력지원시스템) 사업이 탄생하게 됐다.

AAFSS 사업은 수송 헬리콥터의 호위뿐만 아니라 지상군의 근접항공지원(CAS) 소요까지 완벽하게 대처하겠다는 공격기 개념이었다. 즉, 미 육군이 신형의 공격기를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근접항공지원을 전담했던 미 공군과 역할이 중복되는 것으로서, AAFSS 사업은 처음부터 미 공군과의 마찰이 상존했다.

1963년 3월에 확정된 AAFSS 요구성능은 공중정지비행이 가능한 헬리콥터이면서 최고속도 407km/h(220kt) 이상에 항속거리는 3886km(2100nm), 무장탑재량 5.4t(1만2000lb)이라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 정도의 항속거리는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까지 항속이 가능한 거리일뿐더러 괌에서 재급유를 한다면 태평양 횡단비행이나 미 본토 횡단까지 가능한 항속능력이다.

게다가 더욱 혁신적이었던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구현된 주야간 전천후 작전능력까지 요구했다는 것이다.AAFSS로 최종 채택된 AH-56 샤이엔의 공개는 1967년 12월에 이뤄졌다. AH-56의 데모비행을 본 기자들은 ‘샤이엔이 뱅크를 주고 급상승하는 모습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의 그것과 같았다’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임무지역에서 2시간 반 동안 체공하며 2010발의 30mm탄, 780발의 40mm 유탄에 더해 6발의 TOW 미사일과 38발의 70mm 로켓을 동시에 쏟아내는 샤이엔의 성능은 놀라운 것이었다. 5.4t의 무장능력에 수평최대속도 407km/h, 강하비행 시 453km/h의 속도 역시 시대를 앞서간 성능이었다.

시제기의 성공적인 개발에도 불구하고 샤이엔은 필요 이상의 고성능과 복잡성, 높은 가격이 문제가 되어 1972년 9월에 최종적으로 취소됐다. 동시대의 헬리콥터에 비해서 속도·화력·기동성 면에서 거의 2배 성능을 보여 미 육군이 필요로 했던 근접항공지원과 종심타격에 최적인 기체였지만 단지 수송헬리콥터를 호위하기에 너무 과분한 성능이었고, 특히 예산과의 싸움에서 실패로 양산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샤이엔의 실패를 계기로 미 육군은 보다 간소화한 후속 프로그램을 추진해 AH-64 아파치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미 공군은 샤이엔보다 더욱 오래 체공하며 중무장할 수 있는 A-10 공격기를 개발하게 됐다. 샤이엔은 비록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경이적인 성능으로 공격 헬리콥터 역사에 전환점이 된 기체로 기억되고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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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요격·근접공중전 등
   다목적 초음속 전투기


초음속 수직 이·착륙기 역사에서 러시아는 미국, 유럽과 더불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국가 중 하나였다. 1967년 7월 도모데드보 에어쇼에서 이미 러시아는 고정익기로 수직 상승 및 공중 정지, 수평으로의 전환 비행을 관중 앞에서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에어쇼에 사용됐던 Yak-36 ‘프리핸드’ 기종은 실제 작전에 투입할 수 없는 기술시범기 수준의 항공기였으나 안정적인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 러시아의 기술력을 입증했다.

Yak-36 ‘프리핸드’에서 실증된 수직 이·착륙 기술은 실제 임무수행이 가능한 Yak-38 ‘포저’로 이어졌다. 1975년부터 양산 단계에 들어간 Yak-38은 1976년부터 소련 해군의 키에프·민스크 등 항공모함의 함재기로 운용을 시작했으며, 함대 방공 문제가 절실한 소련 해군에 함대 방공 전투기, 대함 공격기, 정찰기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Yak-38은 다양한 임무수행이 가능했지만 전투기로서의 기동 성능이나 탑재 능력, 항속 능력 등 전반적인 성능이 부족했다. 러시아는 수직 이·착륙기보다 미국의 함재기와 같이 통상 이·착륙(CTOL) 방식의 고정익 전투기를 함재형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결정했고, Su-33과 MiG-29K 등이 개발되자 Yak-38을 곧 퇴역시켰다.

Yak-38의 성공 이후 러시아가 준비했던 기종은 Yak-141이었다. 세계 최초의 실용 초음속 수직 이·착륙 전투기를 목표로 개발됐던 Yak-141은 1991년 파리 에어쇼에서 공개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야코블레프 설계국의 홍보자료는 Yak-141에 대해 공중요격, 근접공중전 및 대지공격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초음속 전투기로 설명하고 있었다.

Yak-38과 마찬가지로 Yak-141이 사용한 수직 이·착륙 방식은 추력 편향이 가능한 주 엔진과 수직전용 보조 엔진을 결합한 것이었다. 주 엔진은 배기구가 후방에서 아래로 95도까지 꺾이도록 설계됐다. 수직 아래인 90도보다 5도가 더 꺾이도록 설계한 것은 추진 방향을 약간이나마 전방으로 향하게 해 착륙할 때 감속 효과를 얻기 위해서였다.

Yak-141은 초음속 성능이 요구됐기 때문에 엔진에 후기 연소기가 장착돼 있다. 후기 연소기는 Yak-141의 가속 및 기동 성능에 큰 기여를 했지만 착륙 시 항공모함 갑판 또는 활주로 표면을 가열시켜 손상을 입힐 우려가 있었다.

1989년 3월에 초도비행을 실시한 Yak-141은 기존 Yak-38에 비해 개선된 성능을 입증했다. 특히 최대속도는 마하 1.7을 기록해 최초의 실용 초음속 수직 이·착륙기가 탄생되는 듯했다. 하지만 냉전 종식으로 인한 러시아의 국방예산 감축으로 Yak-141을 비롯한 많은 개발 프로그램이 취소되고 말았다.

Yak-141은 연구개발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 문제로 양산에 이르지 못한 항공기였다. 비록 양산에 이르지 못했지만 Yak-141에 적용됐던 회전 노즐(swivelling nozzle) 기술은 미국의 F-35B 차세대 초음속 수직 이·착륙기에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에 Yak-141은 최초 초음속 수직 이·착륙기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항공기로 역사에 남게 됐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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