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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13 세계의 전사적지 답사기 - 1차 대전 때의 프랑스 베르덩의 총검참호

독일 포병 공격에 佛난리 보병 대부분 전사

베르덩 지역의 총검참호 전쟁기념관.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봉주르 상병은 파리 소르본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조국이 전쟁에 휩싸였다는 소식에 봉주르는 친구들과 같이 주저 없이 프랑스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위대한 조국 프랑스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신생국가 독일에 무릎을 꿇은 이후 알게 모르게 프랑스 청년들의 핏속에는 은연중 언젠가는 그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갚아 주겠다는 복수심이 흐르고 있었다.


 ▶1916년 베르덩 전선의 참혹한 참호전 실상

 그러나 봉주르가 막상 군에 입대하고 베르덩에 배치된 이후 이 지구상에서 실존하는 지옥을 직접 목격해야만 했다. “두개골이 없는 사람이 걸어 다니며 두 다리가 절단된 병사가 달아나기도 했다. 움직일 수 없는 부상병들은 지하대피소에 방치됐다. 상처부위 피 냄새를 맡은 쥐떼들이 몰려와 부상병의 살을 뜯어 먹기도 했다. 참혹하고 처절한 전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신병들은 미쳐서 소리 지르며 참호 밖으로 뛰쳐나가다 적군에 사살당하기도 했다. 독일군의 기습적인 화학탄 공격 시 즉각 방독면을 챙기지 못한 병사들은 독가스에 질식해 자신의 목을 쥐어 뜯으며 참호 속에서 뒹굴다 죽어갔다.” 이런 지옥 속에서 용케도 2년을 버텨 온 봉주르 상병도 결국은 이곳 베르덩 전투에서 꽃다운 22년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총검참호(Bayonet trench)’의 유래는?

 프랑스군 제137보병연대 예하 2개 대대는 1916년 6월 10일 독일군의 베르덩 공격을 사전 탐지하기 위해 주 저항선에서 전진배치토록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방으로 전진하는 137연대의 움직임은 독일군 포병관측병에게 포착됐다. 곧이어 수 시간 동안 프랑스군 2개 보병대대는 독일군 포병으로부터 집중적인 포탄세례를 받고 거의 전멸하게 된다.

 “쏟아지는 집중포화에 우리는 교통호 바닥을 기기만 했다. 미처 유개호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박 같은 독일군 포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의 울부짖는 소리, 중대장은 전화통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차라리 죽음을 각오한 봉주르에게는 구수하게도 느껴진다. 갑자기 봉주르 상병은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 파리의 센 강변에서 같이 웃고 떠들었던 대학 시절의 친구들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가 봉주르는 축 늘어지며 힘없이 눈을 감았다.” 총검 참호 기념관에 남아 있는 프랑스군 병사의 애틋한 사연을 필자가 각색한 내용이다.

 나중에 프랑스군이 이곳을 재점령했을 당시 보병대대 병력은 대부분 전사했으며 길쭉한 프랑스군의 총검들만 무너져 내린 교통호 흙더미 사이로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노출된 보병이 포병의 집중포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 주는 전장 사례다. 전쟁이 끝난 후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연을 기려 1920년 12월에 ‘총검참호(Bayonet trench)’라는 전쟁기념관을 완성했다. 긴 교통호와 총검을 상징하는 구조물과 건물 내부 무너진 참호 흙더미 위의 십자가에는 간간이 꽃다발이 걸려 있다. 물론 봉주르도 프랑스 후손들이 이런 전장의 비극을 더 이상 체험하지 않도록 하늘에서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20여 년 후 똑같은 비극이 마지노선에서 재현되면서 봉주르 상병의 기도는 물거품이 됐다.


마지노 요새 내부 시설(환기통 및 내부배관과 바닥에 보이는 협궤 철로).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마지노선(Magino line)을 만들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부터 프랑스 정부에서는 독일 국경지역에 난공불락의 대규모 요새지대 건설을 구상한다. 특히 지난 전쟁에서의 끔찍한 대량 살상전 경험을 통해 병사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먼저 고려했다. 결국, 공격전으로 무모한 병력피해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방어 위주의 전략을 프랑스는 채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요새진지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킨 마지노(Andre Maginot) 국방장관 역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부사관으로 베르덩 전투에 참전해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었다. 1927년부터 시작된 마지노선 건설 공사는 1936년 불·독 국경지역에 약 700㎞에 달하는 철벽같은 요새지대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이 계획의 근본적인 취약점은 벨기에 국경지역인 아르덴느 산림지대의 요새진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또한 약 40여만 명의 정예 프랑스 육군을 융통성 없는 붙박이 병력으로 고정시켰다. 이런 취약점을 잘 분석한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의 기갑군단을 아르덴느 숲 속으로 기습적으로 진격시켜 프랑스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차게 된다.

 현재 마지노 요새지역은 관광지가 돼 일반인들에게 부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마지노 요새는 교통 불편으로 단체 여행객이 아니면 현장방문이 어렵다. 그러나 막상 마지노선 내부관람을 하게 되면 1930년대의 프랑스 토목공사 기술 수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아울러 지하 30~40m 아래 설치된 각종 시설과 협궤 철도를 이용한 요새지 간의 교통망 등은 프랑스인들이 전쟁대비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금방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시설이 지하거주 장병들의 쾌적한 생활을 위한 것들이며 정작 전투력 발휘를 위해서는 몇 개의 포탑과 기관총 총좌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생존성 보장에 치중하다 보니 잠망경을 통해 제한된 외부관측만이 가능해 은밀하게 접근하는 적을 포착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또한 장기간 폐쇄공간에서 생활하는 장병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포도주에 안정제를 타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새지대 생활은 장병들의 공격정신을 사라지게 해 결국 전쟁 발발 시에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적만을 대응하는 지극히 소극적인 군대로 변모시켰던 것이다.


[Tip]베르덩(Verdun) 전투-제1차 세계대전 중 가장 길고 잔혹

 베르덩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가장 길고 잔혹했던 전투로 꼽힌다. 1916년 2월부터 1917년 여름까지 프랑스 베르덩을 중심으로 독일군의 반복적인 공격과 프랑스군의 반격이 있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54만2000명, 독일군은 43만4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특히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통과시킬 수 없다: 느 빠스롱 빠(Ne passeront pas!)”라는 구호 아래 필사적인 저항을 했으며 후일 프랑스 대통령이 된 유명한 드골(De Gaule) 대위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독일군은 이곳에서 30여m의 불꽃을 뿜어내는 화염방사기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 결과 항복하는 프랑스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두오몽 요새의 정예 33연대가 독일군에 손을 들기도 했다. 또한 탱크·항공기·독가스 등 대량살상무기가 쌍방에 의해 무자비하게 사용됐다.

<신종태 합동군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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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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