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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에 초저공 침투 가능한
고성능 폭격기


1950년대 영국은 일절 외부 항법 및 전투기 지원 없이 적지에 독자적으로 초저공 침투가 가능한 고성능 전천후 폭격기가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은 작전 운용문서 GOR.339로 구체화돼 1957년부터 TSR.2(사진)라 명명된 신형 폭격기 개발로 이어졌다.TSR.2 폭격기의 주요 목표성능은 초저공으로 최소 1800km 밖에 있는 목표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마하 2의 속도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사시 활주로 파괴에 대비해 야지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해야 했다.항공기 설계관점에서 초저공 고속 침투 성능과 야지 이착륙 성능은 다분히 상반되는 요구조건이다. 초저공을 고속으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작고 두께가 얇은 날개가 유리하지만 포장되지 않은 활주로에서 단거리로 이착륙하려면 양력특성이 좋은 크고 두꺼운 날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TSR.2는 이러한 상반되는 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동체 길이가 27m에 달하면서도 날개는 60도 후퇴각의 삼각익을 사용해 날개 폭을 11m로 줄였다. 그 대신 날개 뒷전에 고양력 장치를 전부 설치해 이착륙 성능을 개선했고, 주착륙장치 타이어를 앞뒤에 이중으로 배열하고 감속용 낙하산을 추가해 야지 운용 성능을 얻을 수 있었다.

마하 2의 순항속도를 얻기 위해서는 대출력 신형엔진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올림퍼스 Mk 320으로 명명된 추력 14톤급 엔진이 TSR.2 개발과 병행 추진됐다. 이 엔진은 훗날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의 엔진으로도 사용됐다.고속성능을 얻기 위해 무장은 동체 내부에 탑재되도록 설계됐다. 동체 내에는 핵폭탄 2발 또는 1000 파운드(454kg)급 폭탄 최대 6발 탑재가 가능했다.

전투행동반경은 핵폭탄 탑재 시 1800km, 주날개에 무장을 탑재하면 740km 밖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항속성능과 고속 침투성능도 우수했지만 TSR.2를 초저공 침투폭격기의 전설로 만든 것은 다름아닌 항공전자장비였다. TSR.2는 세계 최초로 지형추적 모드를 갖춘 멀티모드 레이더를 탑재했다.

페란티가 개발한 이 레이더는 관성항법장치와 도플러 항법레이더, 측시레이더(SLAR)와 연계해 독립적으로 완벽한 항법비행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중앙 디지털 컴퓨터에 의한 자동비행장치도 갖췄고, 전방시현장치(HUD), 대기자료시스템,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 조종석 디스플레이까지 완비했다. 이들 장비는 지금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지만 TSR.2가 개발되던 1950년대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것들이었다.

TSR.2 개발비용은 1959년에 6000만 파운드로 예상됐지만 혁신적인 신개념 장비들로 인해 2년이 지나자 비용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은 TSR.2부터 새로운 비용산출법을 적용해 각 단계마다 비용을 추정했지만 개발비 증가가 매우 빨랐다. 1962년 말에 개발비는 1억7000파운드까지 증가하고, 2년 후에는 2억4000파운드, 1965년에는 급기야 7억5000만 파운드까지 개발비가 증가했다.

이는 당시 영국의 경제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반복된 개발일정 지연과 개발비 급증으로 영국은 1965년 4월 TSR.2의 개발을 포기했다. 개발에 성공했다면 초저공 침투폭격기의 전설로 남았겠지만 TSR.2 폭격기는 개발비 급증과 전반적인 사업관리 실패로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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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60m·마하 3…
미 항공기술 역량 집대성


1964년 9월 21일 아침, 미 공군 팜데일 공군기지에서는 역사상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항공기가 떠올랐다. 길이 60m, 무게 250톤, 마하 3의 속도로 순항하며 20톤의 수소폭탄을 투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발키리 폭격기가 탄생한 것이다.발키리(Valkyrie)는 북유럽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이다.

거인족에 대항하기 위해 전사의 영혼을 모으는 발키리는 소련이라는 거인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했던 미국의 의지를 표현하는 명칭이기도 했다. 비록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XB-70 발키리는 인류가 만든 항공기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오래 비행하면서 인류를 파멸로 이끌 만큼 무장을 탑재했던 ‘가장 강력한 항공기’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XB-70 개발이 논의되던 1950년대는 구소련의 핵전력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이 전략공군사령부(SAC)를 창설하고, 대륙간 핵공격 능력을 갖추기 위해 B-36·B-47·B-52 등 전략폭격기를 순차적으로 취역시키던 때다. 미국 전략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구소련은 초음속 전투기인 MiG-19와 MiG-21을 배치시켰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초음속 폭격기인 B-58 허슬러 폭격기를 배치했다.

하지만 B-58은 항속거리가 짧아 B-52 장거리폭격기를 대체할 수 없었고, 장거리 항속이 가능한 핵추진 항공기 WS-12부터 마하 3급의 WS-110까지 다양한 후보안이 고려됐다.XB-70 폭격기는 이 WS-110 프로그램에서 채택된 노스아메리칸의 폭격기 제식명칭이다. 1964년 처음 비행한 시제기는 몇 차례 비행 후에 마하 2.85의 속도를 10분 동안 지속시켰고, 1966년에는 고도 2만2550m와 시속 3250㎞라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고고도를 마하 3의 속도로 순항하기 위해 XB-70에는 고속 비행 시 날개가 아래로 꺾이는 설계가 적용됐다. 이는 초음속 비행 시 발생하는 충격파로 주날개 아래 공기의 압력이 상승되는 압축효과를 활용하기 위한 설계방식이다.착륙할 때 기수를 아래로 꺾을 수 있도록 한 설계도 콩코드 초음속여객기보다 XB-70에 먼저 적용된 설계방식이다.

유로파이터·라팔 전투기와 같이 기수의 보조날개와 삼각형의 주익을 결합한 방식도 현대 전투기에는 일반적이지만 발키리 설계가 시작된 1950년대에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놀라운 성능을 보였던 XB-70의 비극은 1966년 6월 8일 아침에 시작됐다. 홍보사진 촬영을 위해 이륙한 XB-70이 F-104N 전투기와 충돌해 추락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이었던 XB-70의 반대여론은 가속화됐고, 1969년 2월 4일의 비행을 끝으로 결국 XB-70 폭격기 양산은 취소됐다. XB-70은 고고도에서 마하 3급의 속도로 적지를 침투하기 위해 1950년대 미국의 모든 항공기술 역량을 집대성한 결과물이었다.

그 결과 XB-70은 매우 고성능의 무기로 탄생했지만 XB-70의 운용개념은 성능을 따라가지 못했다.1950년대 말에는 이미 다양한 미사일이 등장하고 있었고, 1960년대에 불어닥친 미사일 만능주의는 XB-70의 고고도 침투개념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저고도 고속침투전술을 구사하는 B-1 폭격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XB-70의 성능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도 격추시키기 어려운 우수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는 무기체계 개발에 있어 장비의 성능보다 운용개념 연구와 미래 전장환경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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