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신발끈으로 전체를 조일 수 있는 M1948

 

M1942 전투화



 미 육군은 1943년부터 M1943 전투화를 표준으로 제정, 기존 전투화들을 통합해 교체하려 했지만 여러 이유로 쉽지 않았다.

일단 공수부대는 원래 사용하던 M1942 점프 부츠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고, 전성기에 800만이 넘는 대병력을 유지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육군 전반적으로도 이 모든 병력에 대해 각반과 전투화가 결합된 기존 전투화 체계를 M1943으로 완전 대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도 완전한 통합은 이뤄지지 못했으며, 45년 시점에조차 해외 파병 병력이 아닌 미국 내 병력은 대부분 M1943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M1943 자체의 디자인이 가져온 한계였다.

하부는 평범한 신발끈, 상부는 측면의 버클을 이용해 결속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착용이 불편했다.

이로 인해 일선 병사들은 기존 각반보다는 편리하다고 해도 M1943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하나의 신발끈으로 전투화 전체 길이를 조일 수 있는 공수부대용 점프 부츠를 경험한 병사들은 점프 부츠쪽을 압도적으로 선호했다.

 이로 인해 48년 12월에는 새로운 표준 전투화인 M1948, 일명 ‘러셋 전투화’가 등장한다(‘러셋’이라는 이름은 이 전투화의 소재인 갈색 가죽의 별칭이 러셋이었기 때문이다).

M1948은 M1942 점프 부츠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신발끈으로 전체 길이를 조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미군으로서는 최초로 이런 구조의 현대적 전투화를 전군 표준으로 제식화한 경우였다.

 M1948이 M1942 점프 부츠를 기초로 만들어졌고 외관도 매우 흡사하나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발 뒷꿈치 부분의 내부 설계도 바뀌었고, 특히 밑창의 경우 점프 부츠가 일부는 가죽, 일부는 고무라는 혼합 구조였던 반면 M1948은 밑창을 M1943처럼 전부 고무로 만들었다.

 M1948은 적절한 사이즈를 선택한다면 착용감이 기존 M1943 전투화보다 높고, 특히 장시간의 행군 뒤에는 그 차이가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또 벗고 신는데도 시간이 상대적으로 덜 걸려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까지 보급은 지지부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대대적인 국방비 감축을 겪은 미군의 신장비 조달은 매우 느리게 진행돼 50년까지도 병력의 대부분은 M1943 전투화를 신어야 했으며 의외로 많은 병력이 이때까지도 M1943은 커녕 기존의 각반과 단화를 지급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을 급반전시킨 사건이 바로 6·25전쟁이었다.

6·25전쟁으로 인해 다시 늘어난 병력과 이들을 위한 물자 소요가 급증하면서 M1948의 생산과 조달도 빠르게 늘어났고, 그로 인해 6·25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군 병력 대부분에게 M1948이 주어질 수 있게 됐다.

6·25전쟁 덕분에 이 전투화가 간신히 표준장비로서의 체면을 차린 것이다.

 물론 이처럼 급격한 보급 뒤에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있었다.

M1943을 빠르게 대체하려는 욕심에 일선 병사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발 사이즈와 달라도 무조건 M1948을 지급받았고, 이로 인해 실제 착용 시 일선에서 상당한 문제(주로 발 부상)를 일으킨 것이다.

 M1948은 50년대 중반부터 다른 전투화에 제식의 자리를 양보했으나 60년대 초반까지도 재고가 남아 미군에서 만만치 않은 수량이 사용됐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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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美 육군, 1943년 발목 보호 M1943 전투화 선보여…


2차 대전 후반부터 미군이 사용한 M1943 전투화. 반장화형으로 발목 부분은 별도 버클로 고정



M1942 점프 부츠.



미 육군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중반까지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단화(短靴)를 사용했다.

목이 높지 않은 전투화를 신고 바지 밑단은 두터운 캔버스 소재로 만든 각반으로 조여 활동의 편의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가격은 저렴했지만 발목 보호가 약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이에 따라 원래는 천을 둘둘 감는 형태였던 미군의 각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금속 고리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벗고 착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전투화와 각반이 별도로 분리된 형태가 편리하다고는 볼 수 없었으며 발목 보호가 약한 약점 역시 그대로 남았다.

 1943년, 드디어 현대적 디자인에 가까운 반장화(半長靴)형, 즉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전투화인 M1943 컴뱃 부츠(Combat Boots)가 미 육군에 등장했다. 이 전투화는 별도의 각반이 없고 전체적인 높이가 본격적인 장화보다는 낮지만 일반 구두보다는 현저히 높은 약 8인치(약 20㎝) 정도로 늘어났다.

 즉, 기존에 각반으로 보호하던 발목 부분까지 신발 자체의 가죽으로 보호하는 것인데, 다만 디자인 개념은 각반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전투화 전체를 끈으로 조여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 부분만 끈으로 조이고 발목 부분은 별도의 버클로 고정, 마치 가죽제 각반이 신발에 고정된 것 같은 형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기존의 전투화보다 신고 벗기 편하며 발목 보호가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사실 M1943전투화가 미국에서 처음 채택된 ‘현대적’ 형태의 전투화는 아니었다. 이 형태보다 먼저 나온 것이 바로 1941년에 완성된 미 육군 공수부대용의 1942년형 공수 부대용 전투화, 일명 ‘점프 부츠’였다. 애당초 M1943 자체가 점프 부츠를 기초로 기존 전투화를 개량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점프 부츠는 공수부대라는 새로운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전투화로, 특히 공수 강하 시 착지의 충격에서 착용자의 발과 발목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중시됐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투화보다 많은 부분이 강화됐고 밑창 부분에도 부분적으로 고무가 사용되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특히 별도의 각반 없이 전투화 자체가 연장돼 발목을 보호한다는 점이 중요한 변화였으며 착용감도 높게 평가받았다. 무엇보다 이 점프 부츠는 전투화 전체를 끈 만으로 결속, 고정하게 돼 있어 나중에 나온 M1943보다 오히려 더 선진적인 디자인이었다.

 점프 부츠는 실용성도 실용성이지만 공수부대라는 당시 최정예 엘리트 부대가 사용한다는 점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고 타 부대원들도 어떻게든 사용하려 애를 썼다. 이 때문에 공수부대 관계자들은 타 부대의 사용을 막기 위해 애를 썼지만 완전히 막는 데는 실패했는데, 1944년에는 엉뚱하게도 공수부대가 점프 부츠를 빼앗길 위기에 직면했다. M1943전투화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군 수뇌부가 공수부대까지 M1943으로 통일하려 했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들은 표면적으로는 M1943을 받아들였지만, 실제로는 지급된 M1943과는 별개로 병사들이 개별 구매한 점프 부츠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식으로 변화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들에게 이 전투화는 ‘신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이 점프 부츠를 포기한 것은 1948년에 이르러서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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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M1965, 베트남 전 거쳐 무려 44년간 애용


M1965 야전상의.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5년 등장한 이 옷은 2009년까지 애용돼 미군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용된 복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필자제공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은 전투복 위에 두껍고 긴 코트 형태의 방한복을 착용했다. 모직으로 만들어진 방한 코트는 당시 유럽 군대들의 표준적인 복장으로, 미국 역시 이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코트 형태의 방한복은 방한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혹한기가 아닐 경우에는 무겁고 불편한 데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더워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일선 병사들의 불평도 만만치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30년대 끝 무렵부터 미 육군은 새로운 형태의 방한복 디자인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제임스 파슨(James K. Parson) 소장이 제안한 것으로, 민간용의 길이가 짧은 겨울용 재킷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코트처럼 길지 않고, 소재도 면이기 때문에 모직으로 만든 코트보다 얇지만 그만큼 착용이 편하고 행동의 제약이 적었다.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최신의 장비였던 지퍼를 도입, 입고 벗기가 편했다.

 1940년 6월부터 ‘야전 상의(Field Jacket)’라는 이름으로 배치가 시작된 이 새로운 방한복은 곧바로 병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방한용 코트는 매우 추운 상황이 아니면 불편하기만 할 뿐이었기에 보다 간편한 방한 상의를 원했던 병사들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했던 것이다. 곧 이 옷은 당시 최전선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가벼운 수준의 방한복이 필요한 병사들로부터 널리 애용됐다.

하지만 최초의 디자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몇 가지 단점이 지적됐고 그로 인해 1943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야전상의인 M1943형 야전상의가 채택됐다.

 M1943은 우리가 아는 야전상의의 기본적인 형태를 완성한 복장이다. 초기의 야전상의보다 길이가 길어져 방한 범위가 넓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네 개의 사용이 편리한 주머니, 탈착이 가능한 후드(모자), 그리고 무엇보다 온도에 따라 방한능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탈착 가능한 내피(방상 내피)를 추가한 것이다. 이것으로 야전상의만으로도 상당한 추위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추가되면서 야전상의의 활용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실제로는 1944년부터 대량 지급이 이뤄진 M1943 야전상의는 대단한 성공작이었으며 병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애용됐다.
미군에서의 평가가 워낙 높아 1950년에 이것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된 M1950 야전상의도 M1943과 근본적 차이는 없는 개량형이었으며 다음해에 등장한 M1951 역시 개량은 됐지만 근본 디자인은 같았다.

 M1951의 뒤를 이어 1965년에는 M1965 야전상의가 등장했다. 이 옷 역시 M1951 야전상의를 개량한 것으로, 디자인의 근본적 변화 없이 부분적인 개량을 받은 것이다.

M1965는 놀랄 만큼 오랫동안 애용됐는데,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5년에 등장한 이 옷이 최종적으로 대체된 것은 2009년이나 돼서의 일이다. 무려 44년이나 제식 복장에 포함돼 미군 역사상 가장 오래 사용된 복식으로 기록되며, 그동안의 미 육군 위장색 변화에 맞춘 다양한 색상이 등장했다. 특히 올리브 드랩(Olive Drab) 단색은 1997년까지도 존재했다.

 야전상의는 미군에서만 오래 사용된 것이 아니다. 거의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군용 방한복 디자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도 많은 나라에 유사한 형태의 복장이 있다. 앞으로도 야전상의는 각국에서 애용될 것이다.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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