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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7 Ta 152

Fw 190 개량형…자재·인력난으로 양산 불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말, 독일의 하늘에는 독일 공군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 소속 무스탕 전투기 4대는 임무수행 중 정체불명의 기체 한 대를 발견했다. 독일의 기반시설과 공군을 무력화시킨 이후 격추할 대상이 사라진 무스탕에 나타난 적기는 날아다니는 표적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무스탕은 곧바로 멀린 엔진을 최고 출력으로 높이며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적기는 단순히 기수를 기지로 향한 채 오히려 무스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들은 그저 멀어져 가는 적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가장 고성능 전투기였던 P-51D의 추격을 여유 있게 뿌리칠 만큼 빠른 속도를 보였던 독일군의 이 정체불명의 전투기는 바로 Ta 152였다.

Ta 152 개발은 1942년 5월에 독일이 요구한 고고도 전투기 개발계획으로 시작됐다. 이 고고도 전투기 개발계획에는 메사슈미트와 포케울프가 각각 Me 155B, Ta 152 기종을 참여시켰다. Me 155B는 초고고도 전투기라는 발전된 개념이었지만 개발의 어려움이 예상돼 탈락됐고, Ta 152는 기존의 성공작 Fw 190D를 토대로 안정적인 개발이 예상돼 최종 채택됐다.

Ta 152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미국의 4발 중폭격기와 호위기들을 여유 있게 요격할 수 있도록 고도 1만2500m(4만ft)에서도 고속 운용이 가능한 성능을 요구받았다. 즉, 당시 어떠한 프로펠러 전투기보다 높게, 빠르게 비행할 것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Ta 152는 Fw 190의 주날개와 꼬리날개, 고양력 장치를 대형화시키고, 기수연장과 더불어 동체를 여압화시키는 구조적 변경을 실시했다. 엔진은 신뢰성이 입증된 유모 213 엔진에 수퍼차저와 MW-50 파워 부스터를 추가했다.

개량을 마친 Ta 152 시제기는 고도 9000m에서 시속 750㎞를 낼 수 있었으며, 파워 부스터를 사용하면 고도 1만2500m에서 시속 765㎞라는 경이적인 성능을 보였다. 이 성능은 프로펠러기로서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기 때문에 독일 공군에서도 이 기체의 채용을 결정, 1944년 10월부터 선행양산형인 Ta 152H-0 20대와 양산형 H-1 조달계약이 체결됐다.

양산형의 날개폭은 14.44m로 상당히 대형화돼 있었고, 무장은 프로펠러 축에 Mk 108 30㎜ 기관포 1문과 주날개와 동체에 MG151 20mm 4문(H형은 2문)을 장착하고 있었다.당시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P-51D의 수평 최고속도는 시속 703㎞, 스핏파이어 XIV의 수평 최대속도는 시속 721㎞ 정도였다. 이에 반해 시속 765㎞의 속도에 운용고도 1만2500m 이상이라는 Ta 152의 성능은 어떠한 연합군의 전투기도 쉽게 요격할 수 없는 성능이었다.

게다가 12.7㎜나 20㎜ 기관포를 탑재하던 연합군 전투기에 비해 30㎜ 기관포와 20㎜를 혼재한 Ta 152는 4발 중폭격기라도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트기가 등장하기 시작한 세계대전 말에도 Ta 152의 기동성·속도·화력은 연합군의 폭격기와 호위기를 요격하는 데 충분한 것이었지만 이미 독일의 산업능력은 Ta 152를 대량생산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주력 생산형인 Ta 152C도 5대의 시제기가 1945년 2월에 제작됐지만, 밀려드는 소련군에 생산공장을 차례로 점령당하면서 결국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Ta 152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어떠한 기종보다 빠르고 고고도 성능이 뛰어난 기종이었지만 부족한 자재난과 인력난으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임상민 국방기술품질원 공중전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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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니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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